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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에 대한 존중과 애정, '로건'


'로건'은 한동안은 최고의 슈퍼히어로 영화로 기억될 듯. 캐릭터에 대한 존중과 애정이 없이는 나올 수 없는 해석이다. 그 캐릭터는 창조된 것이지만, 관객이 좋아하는 한 살아있는 생명체나 마찬가지기 때문. 






늙고 지친 표정의 사내가 있다. 주름진 피부와 희끗한 머리의 남자는 한쪽 다리를 전다. 리무진 운전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남자는 어디서든 술을 찾는다. 그는 퇴행성 뇌질환에 걸린 채 휠채어에 앉아있는 90대 노인을 봉양중이다. 근사할 것도, 아름다울 것도 없는 노년의 남자들이다. 


이들은 한때 슈퍼히어로였다. 다리 저는 사내는 ‘울버린’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로건(휴 잭맨), 90대 노인은 ‘프로페서X’였던 찰스 자비에(패트릭 스튜어트)다. 2000년 처음 나온 <엑스맨> 시리즈에서부터 이들 돌연변이들은 세상 사람들의 오해와 질시 속에서도 묵묵히 제 길을 걸어왔다. 프로페서X는 박해받는 돌연변이들을 위한 영재학교의 교장으로 세상의 평화와 공존을 추구했고, 울버린은 두려움 없이 거친 세상을 떠도는 터프가이였다. 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자>가 ‘수정주의 서부극’인것처럼, 28일 개봉하는 <로건> 역시 ‘수정주의 슈퍼히어로영화’라 불릴만하다. <용서받지 못한자> 속 늙은 총잡이는 젊은날의 살육과 무모함을 되새기며 쓸쓸한 삶을 살아갔다. <로건>의 로건과 자비에 역시 늙고 병든 채 ‘살인의 추억’에 괴로워한다. 

로건은 돈을 모아 요트를 사서 자비에와 함께 바다로 나가 말년을 보내려 한다. 한때 강력한 두뇌를 소유했지만 이제는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는 자비에가 어떤 일을 벌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이들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쫓기는 돌연변이 소녀 로라(다프네 킨)가 로건에게 맡겨진다. 로건은 자신을 닮은 로라를 살리기 위해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영화 '로건'




<로건>의 공간적 배경은 멕시코 접경 지대다. 시대 배경은 2029년이라지만, <로건>이 떠올리는 장르는 고전 서부극이다. 흙먼지 날리는 황량한 땅, 국가의 권력이 미치지 않는 공간에는 총 든 사내들이 득실댄다. 영화 속에 직접 인용되는 서부극 <셰인>의 마지막 대사는 <로건>의 주제를 함축한다. 셰인은 다시 황야로 떠나기전 소년에게 말한다. “사람은 생긴대로 살아야해. 어쩔 수 없어. 노력했지만 소용이 없더군. (…) 여기선 살인을 저지른 뒤 살 수 없어. 옳든 그르든, 그건 낙인이야. 돌이킬 수 없어. 이제 가서 엄마에게 말하렴. 모든게 잘될 거라고. 이제 이 계곡에 총은 더이상 없다고.” 

셰인처럼, 홀로 거칠게 살아온 로건 역시 지나간 시대의 죄업을 짊어지기로 한다. 원치 않은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다. 피에 물든 손으로 평화롭게 은퇴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시리즈 사상 처음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로건>은 그만큼 잔혹한 액션을 보여준다. 신체훼손의 수위가 높다. 격렬하고 육중하게 설계된 액션장면 사이로 늙은 로건의 고단함과 슬픔이 묻어난다. 

휴 잭맨은 <로건>을 마지막으로 17년간 9번 연기한 울버린 역을 떠난다. 휴 잭맨 울버린의 마지막으로서는 처연하지만, 이런 결말이야말로 처음부터 울버린에게 준비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해 아이낳고 저녁마다 텔레비전을 보는 울버린을 상상하기는 어려우니까. 

어떤 사내는 예정된 고난을 담담히 맞이한다. 운명을 피하지도 않는다. 그것이 진짜 슈퍼히어로다. <앙코르> <3:10 투 유마>의 제임스 맨골드 감독이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