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영원한 '오늘'을 산다. 아름다운 여인을 매일 새로 만나서 좋고, 거짓말쟁이 대통령이 결국 쫓겨나다시피 물러났다는 소식을 들어서 좋다. 그러나 친구가 베트남에서 죽었고, 옛 연인은 결혼해 애까지 낳았다는 소식을 매일 들어서 슬프다. 기쁜 소식을 들을 날을 매번 되돌려 다시 살 수 있다면 우리의 수명도 조금은 길어질까.
저런 셔츠를 입어도 되는 시절이 좋았다.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지금 옆에 있습니까.
27일 개봉하는 영화 <뮤직 네버 스탑>은 너무 극적이라 믿기 힘든 실화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노부부가 살고 있는 조용한 집에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20년 전 가출한 노부부의 아들 게이브릴이 병원에 누워 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기간 노숙생활을 한 게이브릴은 뇌종양이 있어 부모조차 알아보지 못합니다. 종양과 함께 뇌의 일부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은 게이브릴은 15년 전쯤의 기억에 멈춰 있을 뿐, 새로운 정보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체념하던 노부부는 게이브릴이 밴드 활동을 하던 1960년대 록음악을 들으면 그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행복해한다는 사실을 밝혀냅니다. 노부부와 음악치료사는 비틀스, 밥 딜런, 롤링스톤스, 그레이트풀 데드 등 게이브릴이 좋아하던 노래를 들려주면서 음악치료를 시작합니다. 구체적인 캐릭터는 새로 창조됐지만, 이 같은 환자의 사례는 한국에도 번역된 뉴욕대 의대 교수 올리버 색스의 책 <화성의 인류학자> 중 ‘마지막 히피’에 나와 있습니다.
게이브릴이 ‘그 시절 그 음악’을 듣는 순간의 표정이 기막힙니다. 태엽 풀린 자동인형같이 멍하게 앉아 있던 게이브릴은 비틀스의 ‘올 유 니드 이즈 러브’, 밥 딜런의 ‘데솔레이션 로드’가 나오는 순간, 감격스러워하며 추억의 말들을 쏟아냅니다. 20년 전 헤어진 친구를 만나기라도 한 듯 반가운 표정을 짓고, 그 노래를 듣던 당시의 시대상황, 가족관계까지 이야기합니다.
음악치료중.
세상 모든 사람들이 10대 중·후반 시절만큼 음악을 들으면 음악 산업은 나날이 번창하겠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책이나 영화에 대한 취향과 달리, 음악 취향은 10대 시절에 고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아직도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 본 조비의 ‘리빙 온 어 프레이어’를 들으면 첫 워크맨을 가졌던 중학 시절로 돌아갑니다. 고교 시절엔 황혼기에 접어들었던 LP를 모았는데, 레드 제플린의 ‘신스 아이브 빈 러빙 유(Since I’ve been loving you)’는 의식이라도 치르듯 하루에 단 한 번만 들었습니다. 두 번 들으면 질릴 것 같아 아껴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학교에서는 같은 노래, 가수를 좋아하는 친구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 ‘음악 공동체’는 다른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무시하고 배척할 정도로 결속력이 강했습니다. 이후 좋아하는 음악은 조금씩 변했지만, 그 어떤 음악도 중·고교 시절만큼 열심히 듣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어제의 세포는 죽고 머리카락은 빠집니다. 생물학적으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만물의 유전과 함께 나날이 변화하는 인간관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말일 겁니다.
그러나 20년 전 좋아하던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우리는 20년 전의 우리와 정확히 같은 사람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마들렌 빵을 먹는 순간, 그 빵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서 기나긴 회상을 시작합니다. 우리도 옛날에 좋아하던 노래를 이야기한다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할 겁니다.
노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이자, 타인과의 연결 고리입니다. 완고하고 보수적이던 아버지는 게이블린이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들은 뒤에야 비로소 아들과 공감합니다. 지하철에서 하나의 이어폰으로 같은 음악을 나눠 듣는 여학생들은 음악으로 맺어진 샴쌍둥이입니다. 20년 후,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어른이 된 그 학생이 잠시 떠올리고 미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어제의 세포는 죽고 머리카락은 빠집니다. 생물학적으로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만물의 유전과 함께 나날이 변화하는 인간관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말일 겁니다.
그러나 20년 전 좋아하던 그 노래를 듣는 순간, 우리는 20년 전의 우리와 정확히 같은 사람입니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은 마들렌 빵을 먹는 순간, 그 빵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면서 기나긴 회상을 시작합니다. 우리도 옛날에 좋아하던 노래를 이야기한다면, 며칠 밤을 새워야 할 겁니다.
노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이자, 타인과의 연결 고리입니다. 완고하고 보수적이던 아버지는 게이블린이 좋아하는 노래를 함께 들은 뒤에야 비로소 아들과 공감합니다. 지하철에서 하나의 이어폰으로 같은 음악을 나눠 듣는 여학생들은 음악으로 맺어진 샴쌍둥이입니다. 20년 후, 같은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서 얼마나 큰 행운이었는지 어른이 된 그 학생이 잠시 떠올리고 미소 지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그레이드풀 데드를 듣는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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