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산 로봇 노이지 보이에게 전술을 지시하는 찰리.
로봇은 사람을 닮아야 할까요.
별 볼일 없던 복서가 낡은 체육관에서 연습을 시작합니다. 체육관은 수입이 없어 문을 닫을 처지입니다. 복서는 특유의 인간적인 스타일과 유머로 관중의 인기를 끕니다. 초보 복서는 겁도 없이 세계 챔피언에게 공개 도전장을 냅니다. 챔피언은 도전을 받아들이고, 언론과 관중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 주목합니다.
왜 <록키>의 줄거리를 다시 이야기하는지 묻지 마세요. 위 줄거리의 ‘복서’ 자리에 로봇 ‘아톰’을 넣으면 12일 개봉한 <리얼 스틸>의 줄거리가 됩니다. 물론 몇 가지 설정이 추가됐습니다. 2020년, 인간이 아닌 로봇이 링 위에 올라 복싱을 합니다. 인간들은 로봇에 돈을 걸고, 경기를 중계하기도 합니다. 은퇴한 복서 찰리(휴 잭맨)는 로봇을 조련해 링 위에 올리는 프로모터입니다. 오래전 헤어진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맥스는 존재조차 모르던 아들 맥스(다코다 고요)를 임시로 맡습니다. 부자는 한 팀이 돼 버려진 로봇 아톰을 발굴하고 훈련시킵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될 종반부, 도전자 아톰과 챔피언 제우스의 격투는 영화 <록키>에서 록키와 챔피언 아폴로의 경기를 빼닮았습니다. 전력에서 열세인 도전자는 간신히 초·중반부를 버티다가 종반부에 전세를 역전시킵니다. 심지어 경기 결과마저 같습니다.
그런데 관객이 좋아하는 이야기의 구조가 한정된 것인지, 이 이야기가 통합니다. 한국보다 한 주 먼저 개봉한 미국에서 <리얼 스틸>은 2위 작품을 세 배 가까운 차이로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습니다. ‘로봇 록키’가 성공했으니 앞으로 인기있는 할리우드 고전 영화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 주인공만 로봇으로 바꾼 ‘로봇 사운드 오브 뮤직’ ‘로봇 닥터 지바고’ ‘로봇 빠삐용’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겠습니다.
권투 영화이자 가족 영화임을 보여주는 장면.
눈여겨볼 점은 <리얼 스틸>의 로봇이 인간의 명령을 받거나 동작을 따라하는 데 만족한다는 사실입니다. 이 영화에는 대기실에 홀로 남겨진 아톰이 문득 거울을 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로봇에게도 자의식이 있음을 표현하는 듯하던 이 의미심장한 장면은 그러나 이후 그 아이디어를 전개시키지 못한 채 영화 전체의 ‘잉여’로 기능합니다.
이전 할리우드의 로봇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201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에는 인간 우주비행사를 제거하고 자신만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인공지능 컴퓨터가 등장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큐브릭의 원안을 발전시켜 연출한 <에이 아이>(2001)는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로봇 소년이 주인공이었습니다. 크리스 콜럼버스의 <바이센테니얼 맨>(1999)은 로봇으로 태어났으나 200년의 세월을 살면서 조금씩 인간의 특성을 획득한 뒤 결국 인간으로 죽는 남자가 나왔습니다.
복싱 훈련중.
외로움을 느끼고 사랑을 알고 욕심을 내고 늙고 결국 죽었던 로봇들이 <리얼 스틸>에서는 인간의 동작을 따라하기만 하는 기계덩어리가 됐습니다. 이렇게 영화 속 로봇을 ‘퇴보’시킨 이유는 무엇일까요.
현실에서든 영화에서든 로봇을 인간보다 힘세고 멋있게 만들 기술이 눈앞에 잡힐 듯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로봇을 인간과 너무 닮게 만들면 사용자인 인간이 불편함과 섬뜩함을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인간과 구별되게 만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리얼 스틸>의 로봇이 오히려 과거 할리우드 영화의 로봇들보다 멍청하게 그려지고 있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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