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그림부터.
<눈의 황홀>(마쓰다 유키마사/바다출판사)에서 본 그림이다. 가마쿠라 시대 말기의 오노노 고마치란 사람이 그렸다고 하니, 14세기쯤이다. 제목은 ‘구소시에마키(九相詩繪卷)’. 책의 저자는 "사람이 죽은 직후의 아직 생생한 장면에서부터 점점 썩어가고 결국 뼈만 남아 소멸에 이르는 아홉 번의 변화 과정이 한 장 한 장에 정밀하게 그려져 있다. 변화하는 모습이 굉장히 현실감 있게 그려진 것을 보면 상상이 아니라 직접 관찰해서 그린 것으로 보인다"고 해설했다. 이어서 유명한 에드워드 머이브리지의 연속 사진을 해설하면서, 이 그림이 머이브리지보다 600년이나 빠른 운동 표현이라고 자랑한다.
그럴싸하다. 저자의 추측대로 진짜 시신이 썩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린 것이라면, <CSI>에 나온 '시체농장'이란 곳을 연상하면 될까. 화가는 어디선가 여인의 시신을 가져와서는 남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 둔 뒤 서서히 썩어가는 모습을 관찰했다는 것 아닌가.
그런데 왜 그렸을까. 중세 일본에서 화가의 지위가 어떠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많은 노력이 필요한 그림을 화가 스스로 좋아하기 위해 그렸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죽음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힌 어느 귀족이 주문한 것은 아닐까. 마치 17세기 네덜란드의 바니타스화처럼, 죽음을 곁에 두고 늘 생각하기 위해 그린 그림일까. 아니면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에 나온 것처럼, 시신을 보면서 죽음을 뛰어넘기 위한 일종의 정신적 수행을 한 것일까. 예전 <시게모토 소장의 어머니>를 읽으며 "별 미친 놈..." 하면서 감탄했던 적이 있는데, 역시 그런 미친 생각은 벼락이 치듯 작가의 두뇌에 꽂힌 것이 아니라, 이런 미친 문화적 배경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었다.
일본의 변태스러운 그림에 대해 말하니 고흐의 그림에도 영향을 미친 우키요에 화가 가츠시카 호쿠사이의 이 그림도 생각난다. 제목은 '어부 아내의 꿈'.
그 예전 꼬꼬마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시각 충격을 안겨주었던 일본의 성인 애니메이션 역시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전통의 계승과 혁신은 참으로 중요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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