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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한 전갈파 고수의 최후. <드라이브>

올해 본 모든 영화 중에 한 번 더 보고 싶은 영화 한 편만을 골라야 한다면 <드라이브>다. 칸이 <트리 오브 라이프>에 황금종려상을 준 건 납득할만하지만 재미없는 선택이라면, <드라이브>에 감독상을 준건 흥미롭고 탁월한 선택이다.

<드라이브> 중. 캐리 멀리건은 가만 있어도 불쌍해 보이는데, 이렇게 있으니 더 불쌍해 보인다. 다음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까.



올해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20편의 작품 중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영화 한 편이 끼어 있었다. 덴마크 출신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이 미국 자본으로 만든 액션 영화 <드라이브>였다. 영화에서 가장 고고한 예술의 성채에 난데없이 끼어든 장르 영화의 제목이 어색해 보였다.

운전석에만 앉으면 못하는 일이 없는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는 낮에는 액션 영화의 자동차 스턴트맨으로, 밤에는 돈을 받고 범죄자들을 도주시켜주는 운전사다. 이름도 고향도 알려지지 않은 이 남자는 타인과 교류가 많지 않은 자족적인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남자의 눈에 이웃집 여자와 그 아들이 들어온다. 남자가 그들과 조금씩 가까워지려는 차에, 여자의 남편이 출소해 돌아온다. 남편은 범죄집단으로부터 협박을 받고 있다. 남자는 자신만의 세계를 벗어나 그들을 돕기로 하지만, 여기에는 대가가 따른다.

누아르 영화의 팬이라면 이것이 사골보다 더 많이 우려먹은 이야기 뼈대라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여기에 무엇을 덧붙일 수 있을까. 분위기나 감성이다. 윈딩 레픈 감독은 이 지점에서 성공했다. 장 피에르 멜빌식의 과묵하고 프로페셔널한 주인공이 기타노 다케시식의 갑작스러운 폭력을 사용한다. 데이비드 린치식의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는 그 내용을 포장한다. 같은 블록을 가지고도 조합에 따라 새로운 모양을 만들듯, 윈딩 레픈 감독도 익숙한 것들로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냈다.


<드라이브> 중. 지금 내 노트북 바탕화면.


등에 전갈이 그려진 점퍼를 입고다니는 드라이버를 연기한 배우는 실력에 비해 저평가되어온 배우 라이언 고슬링이다. 선량하고 침착해 보이다가 순간 격렬하게 폭발하는 폭력의 순간들을 고슬링은 순발력있게 표현해냈다. 지금 영국에서 크게 주목받고 있는 캐리 멀리건이 옆집 여자로, 주로 코미디영화에서 재능을 발휘했던 알버트 브룩스가 냉정하고 계산 빠른 악당으로 등장한다. 주제곡으로 사용된 College의 ‘A real hero’는 1980년대풍의 일렉트로니카인데, 잔혹하고 건조한 영화와는 정반대의 몽환적인 멜로디가 며칠을 머리 속에서 떠돈다. 영화가 그보다 훨씬 오래 기억되리라는 점도 분명하다.


결국 올해 칸영화제는 이 새로운 재능에 감독상을 안겼다. 칸에서 발굴된 쿠엔틴 타란티노, 스티븐 소더버그가 이후 장르 영화의 혁신가가 됐듯, 레픈도 미래의 명장으로서의 씨앗을 품고 있다. 17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페이스북에 있는 멋지구리한 <드라이브> 팬 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