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아래 새 것은 없습니까. 패러디는 오리지널을 넘어설 수 있습니까.
애니메이션 <슈렉> 창작의 근본 태도는 패러디였습니다. 늪지대의 녹색 괴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는 점부터가 왕자, 공주 중심이었던 기존 동화의 구도를 뒤집겠다는 의도였습니다. 아름다운 공주가 저주를 받아 괴물로 변했다는 얘기는 같았지만, 이 공주는 왕자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를 구원하려 노력했습니다. 빨간 모자, 백설 공주, 개구리 왕자 등도 우리가 알고 있는 동화와는 다른 성격으로 등장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슈렉>은 동화뿐 아니라 20세기 대중문화의 최대 유산인 영화도 패러디했습니다. <매트릭스> <스파이더맨> <미션 임파서블> <반지의 제왕> 등 젊은 관객이 금세 눈치챌 수 있는 영화의 장면이 슈렉과 그 친구들에 의해 다시 연출됐습니다.
<슈렉 포에버>는 네번째이자 마지막 시리즈입니다. 가정을 꾸린 슈렉과 피오나는 세 아이를 낳고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이어갑니다. 그러나 슈렉은 무시무시한 괴물 놀이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마음껏 진흙 목욕도 즐기던 총각 시절이 그립습니다.
단 하루의 일탈을 꿈꾸던 슈렉은 악당 럼펠의 계략에 속아 자신이 알던 곳과 다른 세상에 떨어집니다. 슈렉에게 행복은 공기와 같았습니다. 잃고 나서야 소중한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슈렉 포에버>에는 피리 부는 사나이 정도를 제외하고는 동화나 영화의 패러디 흔적이 없습니다. 대신 <슈렉 포에버>의 패러디는 다른 곳을 향합니다. 바로 <슈렉> 시리즈 그 자신입니다.
쾌걸 조로같이 멋진 검객이었던 장화 신은 고양이는 체중 조절에 실패한 뚱보가 됐습니다. 슈렉의 절친한 친구였던 동키는 슈렉이 자신을 잡아먹을까봐 겁냅니다. 아내 피오나는 슈렉을 알아보지도 못합니다. 이전 <슈렉> 시리즈와 달라진 캐릭터가 <슈렉>의 패러디 대상입니다.
2001년 처음 나와 10년간 이어진 드림웍스의 <슈렉> 시리즈는 픽사의 <토이 스토리> 시리즈와 함께 2000년대를 대표하는 애니메이션으로 자리잡아 왔습니다. 원본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면 패러디는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앙드레김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에게 앙드레김 성대모사가 재미있을 리 없지 않습니까.
드림웍스는 <슈렉>이 관객에게 충분히 익숙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시리즈를 스스로 패러디하겠다고 마음먹었을 겁니다. 말하자면 <슈렉 포에버>는 기존 동화, 영화를 패러디한 <슈렉>을 다시 패러디한 셈입니다.
<슈렉 포에버>의 전략은 성공했을까요. “전작들과 다르게 무덤덤하고 활기찬 에너지도 없다”(AP), “이제 슈렉과 피오나도 (영화에 나오지 않고) 행복하게 살 때가 된 것 같다”(할리우드 리포터) 등의 시큰둥한 반응이 많습니다.
물론 지난 100여년은 대중문화의 에너지가 폭발한 시기였습니다. 영화, 음악, 텔레비전 등 각 분야에 숱한 유산이 쌓였습니다. 가수였으며 이제 DJ로 유명한 배철수는 음악을 더 할 생각이 없느냐는 질문에 ‘좋은 음악이 너무 많이 나와서 더 이상 쓸 노래가 없다’는 요지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비틀스, 아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듣노라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발언입니다.
이제 남은 방법은 패러디뿐일까요. 그렇다면 서글픈 일입니다. 오리지널 없는 시대라 하더라도, 오리지널을 향한 노력에 예술의 가치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패러디로만 점철된 영화, 표절과 도용 시비로 얼룩진 대중음악, 언젠가 본 듯한 줄거리의 드라마에 정녕 만족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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