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시인 테드 휴즈(1930~1998)의 '오늘부터, 시작'(비아북)을 읽다. 휴즈가 BBC 프로그램 '듣기와 쓰기'에서 강의한 내용을 묶은 시작법에 대한 책으로 현지에선 1967년 출간됐다. 한국에 1990년 해적판으로 출판됐는데 이후 절판돼 중고서점에선 고가에 거래됐다고 한다. 이번에 매끈한 번역과 깔끔한 편집으로 단장돼 출간됐다. 

 

52년 전 출간된 책이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휴즈는 사냥에 대한 어린 시절의 열정을 돌이키고, 오소리, 파리, 달팽이, 여우, 안개, 바람을 관찰하고 시 쓰는 방법을 소개한다. 인용하는 시인도 D H 로렌스, 실비아 플라스, T S 엘리엇 같은 옛 시인들이다. 휴즈가 살아서 올해 책을 냈다면 전혀 다른 소재의 시와 최근의 시인들을 소개할 수 있었겠지. 솔직히 여우를 생각하며 시를 쓸 수 있는 요즘 사람은 매우 드물겠다. 

 

그래도 휴즈의 글에는 시대를 넘는 보편성이 있다. 자연 현상을 관찰하는 방법, 사람들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이유, 자기 가족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기를 그칠 수 없는 이유, 독자의 시선을 끄는 소설 서두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작가가 가족사에 대해 쓰면 '사연팔이 아닌가' 하고 탐탁지 않게 생각할 때가 있지만, 휴즈는 이렇게 얘기한다. 

 

감정이 없는 것에 대해서는 쓸 수 없어요. 흥미롭거나 가슴을 뛰게 하는 것, 혹은 삶에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별로 할 말이 없거든요....여러분도 특이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세상에서 가족만큼 잘 알게 되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어떤 누구나 어떤 것보다도 감정적으로 깊이 묶여 있죠. 따라서 작가 대부분이 자기 가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차고 넘친답니다. 

물론 가족 이야기를 그대로 쓰란건 아니다. 단지 가족으로부터 파생된 감정과 아이디어를 활용해 쓸 수 있다는 제안에 가깝다. 그러므로 작가가 '아버지'를 묘사할 때, 그 아버지는 실제 작가 부친, 친구의 부친, 어디선가 들은 부친의 특징을 골고루 갖출 수 있다.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한 조언도 흥미롭다. 소설은 재미있게 써야 한다. 어떻게? 휴즈는 "정답은 자신이 진심으로 관심 있는 것에 대해서만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다"고 답한다. 

 

글을 쓰면서 작가가 느끼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그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작가가 개인적으로 지루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 쓰려고 하면 글쓰기도 재미없고 지루해집니다. 예를 들어, 거대한 쥐의 습격은 매우 흥미로운 사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재미있게 쓰려면 거대한 쥐의 등장에 흥분하는 작가가 필요합니다. 

 

한 마디로 자신이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 찾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묘사하는데 온몸을 내던져야 한다는 것이다. 발자크는 등장인물의 고뇌를 상상하면서 침대보를 조각조각 물어뜯어 놨다고 한다. 연기에 비유하면, 글쓰기에도 메서드 액팅이 필요하다는 것. 자신이 쓰는 글과 멀찌감치 떨어져 편하게 팔짱 낀 채 관망할 수는 없다는 것. 내겐 동물이나 식물, 자연현상을 묘사하는 구체적인 테크닉보다는, 이러한 휴즈의 창작 태도가 더욱 흥미롭게 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