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 무데, 크리스토발 로비라 칼트바서의 '포퓰리즘'(교유서가)을 읽다. 교유서가 '첫단추 시리즈'의 일환으로 나왔다. 200쪽 정도의 길지 않은 책이지만, 포퓰리즘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사례를 적재적소에 제시했다. 교과서적으로 명료하다. 역자는 친절하게도 라클라우와 무페, 슈미트, 베버 등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참고할만한 책도 제시해주었다. 편집의 센스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해보면. 

 

포퓰리즘이란 사회가 궁극적으로 서로 적대하는 동질적인 두 진영으로, 즉 '순수한 민중'과 '부패한 엘리트'로 나뉜다고 여기고 정치란 민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심이 얇은 이데올로기다.
그들(포퓰리스트) 주장의 핵심은 실제 권력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 즉 포퓰리스트에게 있지 않으며, 오히려 그림자 같은 모종의 세력이 불법적 권력을 보유한 채 민중의 목소리를 억누른다는 것이다....포퓰리즘의 '피해망상적 정치 스타일'을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는 실례다. 
포퓰리즘에서 말하는 일반의지 개념은 공공 영역에서 합리적 과정을 거쳐 구성되기보다는 '상식'에 기반한다....'일반의지' 개념은 권위주의를 지지하는 경향으로 흐르기 십상이다. 
포퓰리즘은 우세한 정치 세력이 의도적으로든 아니든 충분히 제기하지 않고 있는 사회적 불만을 감지하고 정치 쟁점화하는 데 능하다. 
포퓰리즘은 국민주권과 다수결은 단호히 옹호하지만, 소수자 권리와 다원주의에는 반대한다....포퓰리즘은 국민주권을 지지하되 사법 독립이나 소수자 권리처럼 다수결을 제약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에든 반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일부다. 그렇지만 민주주의의 거울상보다는 민주주의의 (께름칙한) 양심에 더 가깝다. 
포퓰리즘이 대개 옳은 질문을 하고 틀린 답을 내놓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저자들은 포퓰리즘은 '얇은' 이데올로기라 다른 이데올로기와 결합한다고도 지적한다. 남미에선 사회주의(차베스)와, 유럽에선 인종주의(르펜)와 결합하는 식이다. 포퓰리즘은 좌파 ,우파로 가를만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중의 의지'를 강조하는 포퓰리즘이 소수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국가 장치들을 무시하고 파괴하려한다는 지적은 중대한 교훈이다. 세계의 수많은 포퓰리스트들이 언급되는데, 한국에선 노무현을 사례로 들었다. 결론적으로 저자들은 포퓰리즘에 비판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포퓰리즘에 단호히 적대하기보다는 포퓰리즘이 배양된 환경을 살피고 적절히 '관리'해야 한다고 결론내린다. 관리의 방법이란 포퓰리스트들의 주장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베일에 쌓인 엘리트 기구의 결정 과정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