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SF팬들의 필독서'라고 하면 출판사도 민망해서 사용하지 않을 책 띠지 문구 같지만, 셰릴 빈트의 '에스에프 에스프리'(아르테)엔 그런 수식을 붙이고 싶다. SF 비평서를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통시적인 관점과 공시적인 관점에서 이 책은 모두 충실하다. Science Fiction의 측면과 Speculative Fiction의 측면을 두루 살피면서, 좋은 작품에 대한 가이드 역할도 한다. 'Science Fiction: A Guide for the Perplexed'라는 원제의 느낌보다는 조금 더 아카데믹한 서술이라 읽기가 마냥 수월하지만은 않지만, 그래도 열심히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다코 수빈의 '인지적 소외' 개념이 흥미롭다. 수빈은 "작가의 현실 속에서, 그리고/또는 그가 몸담은 문화의 과학적 패러다임에 따라 가능할 수도 있는 하나의 '실제 가능성'"을 강조하는 하드SF의 태도를 벗어나, "전제 그리고/또는 결과가 내부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개념적이거나 생각해 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강조한다. "인지와 소외는 우리가 작품 속 이야기의 세계를 인식하게 할 뿐 아니라 그것을 이상하게 바라보게 하고, 텍스트의 세계와 우리 자신의 세계 사이의 차이에 대해 창의적으로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촉구하면서 SF 속에서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마치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처럼, SF를 통해 세계를 낯설게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수빈의 이러한 태도는 과학적 실현 가능성을 강조하는 하드SF보다는 지금, 여기가 아닌 대안적인 사회, 역사의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변 소설의 가능성을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빈트는 '아바타'보다는 '디스트릭트9'을 호평한다. 전자가 "단순히 이쪽 세상 또는 저쪽 세상에 있거나, 꿈을 꾸거나 깨어 있을 뿐"이라면, 후자는 "영화 속 허구의 세계와 관객의 세계 사이의 변증법"을 노린다. '아바타'의 관객은 판도라와 연결되지 않은 현실로 돌아가지만, '디스트릭트9'의 관객은 일상에서도 '인지적 치환'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아울리 빈트는 SF, 판타지 등이 공유하는 허구의 배경, 비유, 이미지, 관습 등을 받아들이는 메가텍스트성, 팬덤의 적극적인 참여가 강조되는 실천공동체로서의 특징, 페미니즘, 퀴어 등 신념을 강조하는 SF들에 대해 논한다. 아지모프, 클라크, 하인라인의 SF 팬들에게는 생경한 책이겠지만, 그 이후의 뉴웨이브와 페미니스트와 21세기의 SF를 이해하는데는 훌륭한 책이다. 

 

**'에스에프 에스프리'란 번역 제목을 어떻게 붙였는지 궁금하다. 왠지 책 출간을 앞두고 연 브레인스토밍 회의가 아니라, 오래 전부터 생각해둔 '에스에프 에스프리'란 제목을 언제 써먹을까 하고 간직해두었다가 이번에 붙인 것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