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들은 하나 둘씩 강호를 등졌습니다. 누군가는 태평양을 건너 할리우드로 갔고, 누군가는 본토 베이징으로 갔습니다. 이제 전쯔단(甄子丹)은 홀로 남은 강호의 고수입니다.
<엽문2>는 리샤오룽의 스승으로 알려진 영춘권의 대가 엽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입니다. 전편에서 일본군에 맞서다가 부상을 당한 엽문이 종전 이후 홍콩으로 건너와 겪는 일을 그렸습니다. 엽문은 홍콩의 여러 사범들의 텃세에 맞서 도장을 지켜내는 동시, 중국인을 무시하는 영국인 권투 챔피언과의 대결도 준비합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무술인 가족 출신인 전쯔단은 1980년대부터 배우와 무술지도를 겸하며 경력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신용문객잔> <철마류> 등에 출연하며 인지도를 높였고, 할리우드 영화 <블레이드2>의 무술감독으로도 활약했습니다.
정작 그가 관객의 눈에 띄기 시작한 건 2000년대 들어서였습니다. <영웅> <용호문> <도화선> <살파랑> 등이 이 시기의 작품입니다. 그러나 한때 아시아 최고의 상업영화를 만들던 홍콩 영화계는 쇠퇴기에 접어든 지 한참이었습니다. 유력 영화인들은 홍콩의 중국 반환을 즈음해 구룡반도를 벗어났습니다.
그래도 전쯔단은 여전히 홍콩에 남아 꾸준히 무협영화를 만들었고, 세계의 관객은 전쯔단의 외로운 분투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알려졌기에 전쯔단을 젊은 세대의 액션 스타로 생각하는 분이 계실지 모르지만, 그는 리롄제(李連杰)와 동갑인 46세입니다.
<엽문2>는 두 가지 지점에서 의미심장합니다. 우선 전쯔단은 홍콩 무협영화에 세계적 인기를 안긴 리샤오룽의 스승을 연기함으로써 자신의 뿌리를 찾습니다. 종합격투기 기술까지 끌어들인 공격적인 액션을 만들곤 했던 전쯔단은 공격보다 수비, 싸움보다 화해를 강조한 엽문을 연기하며 무예의 정신을 되새깁니다.
또 한 가지 강조할 점은 청룽(成龍), 리롄제 등과 함께 80년대 홍콩 액션영화의 전성기를 이끈 홍진바오(洪金寶)의 출연입니다. 60대를 바라보는 이 노장은 예의 육중한 몸을 이끌고 상대적으로 젊고 빠른 전쯔단과 기꺼이 대련합니다. 좁은 원탁 위에서 두 고수가 펼치는 대결은 <엽문2>의 하이라이트입니다.
적이 없는 고수는 외롭습니다. 실력을 뽐낼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고수끼리만 이해할 수 있는 세계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입니다. <엽문2> 속 두 고수는 주먹과 발을 맞부딪치면서 화려했지만 돌아올 수 없는 옛 시절을 추억합니다. 말이 필요없는 옛날 남자들의 대결, 멋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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