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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영화다,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할리우드판 '공각기동대'를 영원히 기억할 걸작으로 기억할 수는 없겠지만, '원작'에 비교하며 깎아내리는 풍조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벗어나 영화라는 새로운 필드로 들어온 한, 새로운 평가 기준을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 



1989년 시로 마사무네의 원작만화, 1995년 오시이 마모루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인기를 얻은 <공각기동대>는 이후 나온 많은 SF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진다는 설정은 <매트릭스>(1999) <아바타>(2009) 등에서 만날 수 있다. 

할리우드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기획 단계부터 여러모로 기대와 우려를 받았다. 복잡하고 기묘한 원작의 세계관을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어떻게 소화할지 관건이었다. 주인공 ‘메이저’ 역에 스타 스칼렛 요한슨이 캐스팅됐다는 소식도 원작의 유색인 역할을 백인 배우로 대체하는 ‘화이트워싱(whitewashing)’ 논란을 불렀다.

인간의 영혼과 기계의 신체를 결합하는 방식이 일반화된 미래 사회. 메이저(스칼렛 요한슨)는 강력 범죄를 담당하는 특수부대 섹션 9을 이끈다. 섹션 9은 첨단 로봇 기술기업 한카 로보틱스를 파괴하려는 범죄 조직을 추적한다. 메이저는 사건의 실체에 근접할수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가진다. 

원작으로부터 30여년 가까이 흐른 지금,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묻는 질문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아프고 병든 사람들은 이미 신체의 많은 부분을 기계로 대체하고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인체의 확장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공지능 알파고의 충격 이후, 인간은 기계에 더 많이 의존할 것으로 보인다. 






영화 <공각기동대>는 원작의 정체성 질문을 주제적으로 확장하는 대신, 시각적으로 정교화했다. ‘잘하는 것을 잘하겠다’는 태도다. 빼어난 시각효과 기술력으로 인간과 기계의 기묘한 접점을 보여준다. 덕분에 주인공 메이저에게서는 ‘인간 냄새’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어려운 임무를 수행하다 상처를 입으면 ‘부상’이 아니라 ‘파괴’된 것처럼 보인다. 요한슨의 아름다운 얼굴 역시 인조 피부가 벗겨질 때 섬뜩한 느낌을 안긴다. 걸음걸이도 조금 부자연스럽고, 대사엔 웃음기가 말라있다. 크고 작게 이같은 ‘의체’를 받아들인 인물들이 많다보니, 온전한 인간으로 남은 인물들이 오히려 어색하다. 인간과 거의 비슷한 로봇에게 느끼는 불쾌감을 뜻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블레이드 러너>나 <매트릭스> 정도는 아닐지언정, 음산하고 기괴한 시각효과와 음악으로 인해 <공각기동대>의 미래도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쪽에 가깝다. 

로봇끼리 싸우는 모습은 <트랜스포머> 시리즈에서 신물나게 봤다. <공각기동대>에서는 인간, 기계를 이식한 인간, 기계가 얽혀 싸운다. 액션 설계가 독특하기보다는 분위기가 독특해 인상을 남긴다. 스칼렛 요한슨의 ‘백인 메이저’는 후반부에 나오는 설정 덕에 ‘화이트워싱’ 논란을 교묘히 피했다. 다만 여성적인 매력이 넘치는 요한슨이 중성적이고 기계적인 메이저 역에 잘 어울린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이 정도 규모의 액션영화를 홀로 이끌 여배우가 요한슨을 포함해 몇 되지 않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29일 개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