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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도 죽이지 말라 '세계 종교의 역사'


'세계 종교의 역사'(소소의 책)를 읽다. 원제는 'A Little History of Religion'이다. '리틀 히스토리'라 한 것은 책 분량이 적다는 뜻이 아니라, 각 종교를 간략하게 설명한다는 뜻인 듯하다. '세계 종교의 이해'같은 타이틀의 대학 교양 시간에 교재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대학교수인 역자가 이 책을 그러한 용도로 추천하고 있다. 역자니까 당연히 자신의 책이 좋다고 하겠지만, '옮긴이의 말'의 찬사는 의례적인 수준을 뛰어넘는다. '탁월' '두려움' '질투' '감사' 같은 어휘가 사용된다. 난 해당분야 전공자가 아니니까 그런 느낌은 아니지만, 책에 대한 찬사에는 많은 부분 동의한다. 

저자 리처드 할러웨이는 스코틀랜드 성공회의 에딘버러 주교를 역임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책이 '기독교와 그외 세계종교 해설'에 그치진 않는다. 모세에서 시작해 동서양을 아우르며 종교의 흐름과 관습들을 알기 쉽게 설명한다. 각 종교의 방대한 때로 난삽한 교리를 단정한 언어로 정리했다. 물론 '너무 정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략한 것도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정리하지 않았다면 이 책은 400여쪽 한 권이 아니라 수십 권의 시리즈로 나와야 했겠지.

가톨릭, 개신교, 이슬람, 불교의 흐름이야 대략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만, 덜 알려진, 그래서 이상하거나 때로 감동적인 작은 종교들도 소개한다. 내게 흥미로운 건 그런 '작은' 종교들이었다. 몇 가지 예로 들면


-자이나교 : 영혼이 윤회의 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 극단적인 자기부정의 길을 선택한다. 자이나교의 최고 이상은 수행자들이 굶어죽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무엇이든 죽이거나 해치지 말고, 어떤 것도 탐내거나 갈망하지 말라. 비폭력의 계율은 자이나교에서 절대적이다. 육식은 물론이고, 사냥, 낚시도 안된다. 모기가 뺨을 물어도, 벌이 목을 쏘아도 죽이면 안된다. 집 안에 거미가 줄을 치면 다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잡아 집 밖으로 내보내야 한다. 길을 걸을 때 벌레를 밟지 않도록 가벼운 깃털로 만든 빗자루로 길을 쓸면서 걷는다. 혹시 숨을 들이쉴 때 입 안으로 곤충이 들어오지 않게 마스크를 쓰는 이도 있다. 식물도 죽이면 안된다. 오직 떨어진 과일만 먹어야 한다. 물론 수행자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다. 자이나교는 정신적 영역에서도 비폭력을 추구한다. 인간은 누구든 사물의 전체를 보지 못하기에, 사물을 보는 다양한 방식을 인정해야 한다. 자이나교의 '정신적 겸손함'은 종교 역사에서 매우 보기 드물다. 


-시크교 : 1469년 태어나 1539년 죽은 구루 나나크가 창시했다. 시크교는 믿음을 감독하는 사제, 중재자를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도 종교의 개신교'라 할만하다. 나나크는 '함께 먹기'를 중시했다. 대부분의 종교가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계층을 구분하거나 여러 개의 식사 금기를 두지만, 시크 공동체는 공동 식사의 관습을 도입했다. 시크교 사원에는 부엌이 건물의 다른 부분만큼 신성하다. 시크교 사원에는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이 있다. 이는 모든 방문자에게 열려있음을 뜻한다. 시크교도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터번을 쓴다. 시크교는 인종적 정체성을 중시하고, 포교에 힘쓰지 않는다. 다만 그들 종교에 합류하길 원하는 사람은 기쁘게 받아들인다. 


-퀘이커교 : 17세기 영국인 조지 폭스에서 유래했다. 구두제작자의 도제였던 폭스는 신부, 설교자, 의례, 예복, 교회같은 공간이 필요없다고 여겼다. 조용히 앉아서 성령이 마음 속에서 말걸기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신의 빛은 이미 그들 각자 안에서 불타고 있었다'. 여자, 남자, 노예, 자유인 등 모든 인간이 동등하다고 여겼다. 성서는 쓰여진 당대의 문화를 반영하기에 노예제의 폐지를 주장하지 않았다. 퀘이커교는 놀랍게도 이같은 성서의 해석에 도전했다. 심지어 도망 노예들을 돕는 단체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퀘이커교는 역사적, 비판적 성서 연구의 초석을 닦았다. 성서에 끼친 신의 영향력을 인정하되, 성서의 인간적인 요소를 구분한다. '퀘이커'(quaker)란 폭스가 '내가 유일하게 몸을 떨면서 겁내는 권위를 가진 분은 오직 신'이라고 밝힌데서 유래한다.  


-모르몬교 :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일명 모르몬교는 1805년 미국 버몬트 소농의 아들인 조셉 스미스에게서 유래했다. 스미스는 25살이 되었을 때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 4세기쯤 모르몬이라는 사람이 경전을 새긴 황금판을 뉴욕주 팔미라 산에 묻었다는 것이었다. 스미스는 황금판을 파내 영어로 번역하고 이를 '모르몬경'이라고 불렀다. 기독교가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하듯, 모르몬교는 미국을 배경으로 한다. 모르몬교는 예수가 부활한 지 몇 달 후 아메리카 대륙을 방문해 당시 북미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보살폈다고 믿는다. 스미스는 고대 이스라엘식 믿음의 회복을 주장했기에, 일부다처라는 성서적 관습을 회복해야 한다고 믿었다. 스미스는 40명에 이르는 아내를 얻었다. 스미스는 감옥에서 살해당했지만, 그를 이은 브리검 영이 조직을 재정비했다. 영은 수천 명의 신도와 함께 서부의 인적 드문 유타에 자리잡았다. 영은 훗날 유타 초대 주지사가 됐고, 모르몬교는 유타에서 안전을 확보했다. 다만 국가제도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일부다처제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몬교 남성 교인은 국내 또는 국외에서 2년간 선교 활동을 해야 한다. 담배, 약물, 술, 차, 커피, 도박, 문신, 피어싱은 허용되지 않는다. 가족생활을 중시해 많은 자녀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기에 부를 쌓은 이들이 많다. 

-세속적 인본주의(secular humanism) : 종교는 많은 결함이 있지만, 미덕도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세속적 인본주의는 종교라 하기 어렵지만, 종교의 좋은 아이디어를 빌려 왔다.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종교가 부과한 원칙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 만든 원칙으로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이들은 종교가 인생의 중요한 전환점을 기념하는 의식의 필요성을 받아들인다. 그래서 세속적 인본주의자들은 결혼식, 장례식, 신생아 명명식 등 주요 의식을 집전하도록 돕는다. 아울러 세속 영성(secular sprituality)의 아름다움을 찾는다. 종교의 예배가 만남과 교류의 장이 됨을 알아채고, 자신들만의 일요 집회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