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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과 식당주인과 그 아내와...'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


장강명 작가의 추천으로 제임스 M 케인의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민음사)를 읽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69권'이니 '명작' 맞겠지? 그런데 내용은 정말 통속적이다. 어느 고속도로변 간이 식당에 우연히 흘러들어온 건달 프랭크가 식당 주인 여자 코라와 눈이 맞아 주인 남자를 교통사고로 위장해 살해한다. 둘은 노련한 변호사의 변론으로 살인혐의를 벗고 남편이 들어놓은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낸다. 하지만 프랭크와 코라는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 둘은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서로에게 묶어둔다. 임신한 코라가 아파 프랭크가 서둘러 차를 몰고 돌아오는 중에 교통사고가 난다. 코라는 앞 유리창 너머로 튕겨나가 죽어버리고, 프랭크는 여자의 살인 누명을 쓴 채 교수대에 오른다. 끝. 

여자의 죽음은 남자가 의도하지 않았기에, 그 살인 혐의를 쓰는건 억울하다. 그러나 여자의 남편을 죽인데 대한 죄값을 치르지 않았으므로, 넓은 인생의 관점에서 보면 결국 마찬가지. 억울해 가슴칠 일도 없고, 운좋다고 기뻐할 일도 없다. 죽으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이 책을 '통속적'이라고 했지만, 그건 비난이 아니다. 난 통속적인 걸 좋아하니까. 통속적인 것은 흔하다는 얘기인데, 어떤 이야기가 흔하게 들리는데는 이유가 있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세상의 이야기 패턴이라는 건 많지 않은 듯하다. (아마 문창과에 가면 금방 배울 것 같다) 몇 가지 이야기 패턴을 어떻게 변주하는지, 얼마나 잘 다루는지가 관건일 뿐이다. '마담 보바리'는 얼마나 통속적인가. 나보코프의 '어둠 속의 웃음소리'는? '안나 카레니나'도 빼놓을 수 없고. '안나 카레니나'에서 잘 읽히는 건 레빈의 삶을 통해 드러나는 집요한 계몽성이 아니라, 안나의 낭만적이고 비극적인 불륜담 아닌가. 



잭 니콜슨, 제시카 랭이 주연한 영화. 영화를 보고 싶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 중 하나는 대사다. 마치 시나리오처럼, 둘의 건조하고 짤막한 대화가 핑퐁핑퐁 오간다. 자세히 읽지 않으면 대사의 발화자를 놓치기 쉽다. 그런데 이야기를 쓸 때 이런 대사를 구사할 수 있는 건 축복받은 재능 같다. 머리 속의 생각을 50페이지에 걸쳐 풀어놓기는 잘해도, 두 세 줄 대사는 못쓰는 작가도 많다. 장강명 작가에 따르면 케인은 이 소설을 쓰면서 8만 단어였던 초고를 3만5000 단어로 압축했다고 한다. 짧은 글을 길게 늘리면 듬성듬성해지지만, 긴 글을 짧게 압축하면 쫄깃쫄깃하다는 건 글을 만져본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 (레이먼드 카버의 신비로운 단편들도 편집자가 글을 엄청나게 쳐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있다)

건달 프랭크의 배경을 알려주지 않은 채 다자고짜 시작하는 도입부도 마음에 들었다. 프랭크는 소설이 시작한 지 불과 10줄만에 작품의 주된 배경인 '쌍둥이 떡갈나무 선술집'에 들어온다.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살해당하는 조연이, 그 다음 페이지에는 프랭크의 공범자가 되는 미녀가 등장한다. 빠르다. 난 이런 '다짜고짜'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