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르고스 란티모스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실존인물인 영국 앤 여왕의 이야기를 그렸지만, 어딘지 실제 이야기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아마 영화의 양식이 지금까지의 시대극과 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여왕이 중심인 영화야 많았지만, 그의 측근들까지 모두 여성으로 그린 영화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남자는 여왕과 두 여성 측근에 의해 조종되는 말에 불과하다. 권력있는 신하들조차 여왕 하녀의 술수에 놀아난다. 

세습군주국가의 많은 왕이 그러했겠지만, 앤 여왕(올리비아 콜맨)은 꽤나 이상하다. 군주로서의 의무감으로 국정을 억지로 수행하지만, 이웃나라와 전쟁을 치르는 국가를 운영할 능력은 없어 보인다. 안아픈 데가 없어서 회의에 불참하는 일이 잦고, 변덕이 죽 끓듯 하고, 기괴한 컴플렉스까지 갖고 있다. 그 와중에 오랜 친구인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가 여왕 대신 국정 전반에 관여한다. 신분 상승의 욕구에 불타는 귀족 출신 하녀 에비게일 힐(엠마 스톤)이 여왕과 사라 사이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에비게일, 여왕, 사라, 그리고 그들의 사랑과 전쟁이 벌어지는 화려한 궁궐. 

여왕의 존재감은 크면서도 없다. 하녀와 하인들에게 히스테리를 부릴 때, 호화찬란한 침실을 마음대로 사용할 때는 궁궐의 주인이지만, 국정을 관할할 때는 누군가에 의해 조종되길 기다리는 꼭둑각시 인형 같다. 흥겨운 무도회를 갑자기 중단시키거나 아름답고 조화로운 현악5중주단을 향해 소리를 지른다. 갑자기 사라의 뺨을 후려치더니, 곧 그녀의 특별한 서비스를 받는다. 군주제 권력 시스템의 허점, 앤 여왕이라는 독특한 캐릭터의 허점을 파고드는 모리배들이 나타난다. 사라가 왜 그리 권력을 휘두르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사라는 마치 권력이 원래부터 자기 것인양 자연스럽게 휘두른다. 반면 에비게일의 목표는 비교적 명확하다. 뚱뚱하고 성기가 작은 독일인에게 팔려가듯 시집간 경험이 있는 에비게일은 어떻게든 신분을 다시 상승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에비게일은 사라가 어떻게 앤 여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조심스레 살핀 뒤, 이를 업그레이드해 적용한다. 에비게일은 사라보다 젊고, 더 강한 동기부여가 돼 있다. 어쩌면 에비게일은 사라의 20여년전쯤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더 페이버릿'은 무능해 보이지만 여전히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여왕을 중심으로, 획득하기도 다루기도 어렵지만 일단 쥐고 있으면 더없이 좋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암투를 벌이는 두 여성의 이야기다.국가 운영의 큰 틀을 둘러싼 이념적 대결도, 셰익스피어식의 장엄한 궁중 비극도 없다. 누가 권력자의 비위를 잘 맞춰 환심을 사느냐가 가장 중요한 문제일 뿐이다. 

두 차례 인상적인 롱테이크 클로즈업이 나온다. 앤 여왕이 무도회에서 사라의 춤을 보다가 조금씩 표정이 굳어가는 모습, 앤 여왕이 권력을 차지한 에비게일에게 히스테리를 부리며 다리를 주무르라고 하는 모습이다. 그때 앤 여왕의 마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길이 없다. 영화는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저 올리비아 콜맨의 스산하면서도 무서운 표정으로 권력자 내면의 황폐한 풍경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사라와 에비게일, 두 여자가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건 쟁투를 벌였지만, 이 전쟁의 주인공은 결국, 당연히도 여왕이다. 여왕의 내면은 두 여자가 맞붙은 전쟁터가 됐다. 영화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고도 관객이 그 내면의 전쟁터 풍경을 관찰할 수 있게 한다. 군주의 황량한 내면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묻는다면, 의미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풍경은 분명 흥미진진하며, 권력 일반의 속성에 대해서도 은근한 암시를 한다. 

아름다운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