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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기적.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리뷰+고레에다 히로카쓰 감독 인터뷰

나도 나중에 중요한 인터뷰이가 돼서, 누가 한참 물어보면 "그렇군요" 한 마디 한 뒤 가만히 인터뷰어를 바라보고 싶다.

영화는 이렇게 행복한 가족을 보여주지 않는다.

형 고이치는 엄마와 함께 일본 남단 가고시마의 외가에 살고 있다. 동생 류는 인디 음악가인 아빠와 함께 북쪽 후쿠오카에 산다. 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나빠 별거한 상태.

고이치는 인근의 화산이 폭발하면 가고시마에 살 수가 없으므로, 아빠가 있는 곳에서 온가족이 뭉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규슈 지방에 신칸센 고속열차가 개통된다. 아이들 사이에는 반대편에서 달려오던 두 열차가 마주치는 순간 소원을 빌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이야기가 돈다. 고이치와 류 형제, 그들의 친구들은 각자의 소원을 품은 채 기차가 마주치는 장소를 찾아나선다.

고레에다 히로카쓰 감독의 대표작 <아무도 모른다>(2005)와 신작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기적)은 모두 자신들만의 세계를 꾸려가는 아이들을 다룬다. 그러나 두 영화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전자가 먹먹하고 섬뜩한 비극이었다면 후자는 상쾌하고 유쾌한 희극이다. <아무도 모른다>로 병주고, <기적>으로 약준다.

물론 <기적>의 웃음은 즉물적이지 않다. 감정과 사유의 세밀한 필터를 거친 이 웃음은 관객의 행복감을 아주 천천히 고양시킨다. 억지스러운 해피엔딩, 극적으로 꾸민 이야기는 없다. 영화가 끝나도 두 어린 형제의 처지는 외견상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두 형제의 마음은 영화가 시작했을 때보다 한 뼘쯤 자랐다. 좋은 성장영화는 관객에게 부모의 마음을 불어넣는다. 등장인물이 성장할 때, 관객은 부모처럼 미소 짓는다.

<기적>의 어른들은 완전하지 않다. 어떤 부부는 별거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어떤 아빠는 손을 잡아끄는 아들을 떼어놓은 뒤 빠찡꼬장으로 향하고, 어떤 엄마는 배우가 되겠다는 딸을 대놓고 무시한다.

불완전한 어른들의 세상 속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자라날까. <기적>은 그 양상을 침착하게 관찰한다. <기적>은 올해 3월 개통된 규슈 신칸센 열차의 홍보를 위해 제작됐다. 그러나 이 영화가 무언가의 홍보를 위한 영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영화가 홍보하는 것이 있다면 어깨에 화산재가 떨어지는 불안한 삶터에서도 우리들은 어떻게든 살아가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이 바로 기적이라는 메시지일 것이다. 22일 개봉.

둘의 사이가 아들과 아버지란 사실이 믿어지는가. 이 아들은 후에 '출생의 비밀'을 캐지 않을까.

고레에다 히로카쓰(是枝裕和·49)의 말은 그가 찍은 영화를 닮았다. 그의 영화는 평범해 보이는 삶을 무심히 전시하다가, 어느 순간 묵직한 둔기로 관객의 뒤통수를 내리치곤 한다. 그는 길게 이어진 질문에는 “소데스네(그렇네요)”라는 한 어절 답변을 내놓다가, 뒤돌아서니 생각나는 뼈있는 말도 들려줬다.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이하 기적)의 홍보를 위해 내한한 고레에다 감독을 최근 만났다.

- ‘기적’은 통상 초자연적·종교적 현상을 일컫는데, 영화에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영어 제목도 ‘miracle’이 아닌 ‘I wish’다.

“그렇다.”

- <기적>의 아이들은 줄곧 뛴다.

“아이들은 뛰는 법이다. (전작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들은 안 뛰었는데) <아무도 모른다>의 아이는 아이로 남을 권리를 빼앗긴 존재였기 때문이다.”

- 아역 배우의 연기 지도에 특별한 방법은?

“함께 나오는 성인 배우에게 지도를 받게 한다. <기적>의 성인 배우들은 대부분 나와 몇 차례 작업을 해서, 내가 어떤 표현을 원하는지 이해한다. 아이들에게 미리 대본을 주지 않은 채 현장에서 리허설을 진행한다. 아역 배우에게 극중 할머니와 진짜 할머니 같은 관계를 맺게 한다. 어른이 아이에게 무언가 던지면서 생기는 것을 끌어낸다.그렇게 되면 어른의 연기도 더 열린다”

- 영화 속 어른들은 불완전하지만 모두 아이에 대한 선의가 가득하다. 그런 일이 가능한가.

“모두는 아니겠지만 그런 어른도 있을 것이다. 영화 속 아이들의 모험은 어른들의 선의와 무관심 덕에 가능했다. 어른의 무관심은 때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겠지만, 아이들의 시간·공간도 중요하다. 학교를 예로 들면 도서실·양호실 등 성적과 무관한 공간, 가정으로 따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같이 다소 거리가 있는 사람들과 있을 때 아이들끼리 협력할 수 있다.”

- <기적>에 무책임한 아빠 역으로 나오는 오다기리 조는 공교롭게도 같은날 한국에서 개봉하는 대작 <마이 웨이>에도 출연했다. 그는 어떤 종류의 영화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하나.

“예산의 규모로 작품을 판단하진 않는다. 글을 쓰는 사람은 무언가를 칭찬하기 위해 다른 것을 낮춰도 될지 모르겠지만, 창작하는 사람은 그래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친구하고 영화를 보러 가면 욕을 하기도 한다(웃음). 그러나 공개적인 자리에선 다른 작품에 대해 얘기하지 않는다. ‘더 잘 만들라’는 얘기는 내가 나한테만 하면 된다.”

- 전작 <공기인형>에선 한국배우 배두나와 함께 작업했다. 또 하고 싶은 사람은 없나.

“배두나와 한 번 더!(웃음)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다. 아울러 송강호와는 언제 어떤 형태로든 일하고 싶다. 김새론의 작품은 두 편 봤는데, 일본의 아역과는 다른 종류의 배우라는 느낌을 갖고 있다. 아울러 양익준도 배우로서 기용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그의 다음 연출작을 더 보고 싶다.”

- 동일본 대지진 이후 당신의 영화관, 인생관에는 변화가 있는가.

“앞으로 작품에 어떻게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대지진은 내가 지금까지 5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겪은 가장 큰 사건이었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1945년부터 ‘패전 이후 몇 년’이라는 식으로 세월을 헤아렸다. 내 마음속에선 ‘2011년 3월 이후 몇 년’ 하는 식으로 헤아릴 것 같다. 물론 대지진에 대해서는 일본 내에서도 받아들이는 무게가 다르다. 그러므로 대지진 이후 ‘일본은 하나다’라는 구호를 내걸면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고레에다 히로카쓰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