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를 수많은 사람이 함께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과속 스캔들>의 흥행을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4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500만 관객 돌파를 노리는 이 영화는 지난해 말 최고의 '슬리퍼 히트'(깜짝 흥행)라 할 만합니다. <엽기적인 그녀> 이후 이렇다할 히트작이 없던 차태현과 신인 배우 박보영의 조합, 무명의 신인 강형철 감독의 연출, 특별할 것 없는 소재 등 <과속 스캔들>엔 흥행 요소가 전무했습니다. 게다가 투자·배급사 롯데쇼핑(주)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한국영화 3강'이라는 칭호가 무색하게 지금까지 <사랑>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200만 관객이 최고 흥행 성적이었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화계에선 500만 관객을 하나의 기점으로 봅니다. 이 수치까지는 영화 자체의 힘만으로 끌어갈 수 있지만, 이 이상을 동원하려면 영화를 넘어 '사회 현상'이 돼야 한다는 겁니다. 신문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에서 관련기사를 볼 수 있고, 영화평론가가 아닌 사회학자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는 관객수입니다.
당신은 <과속 스캔들>을 보셨습니까. 혹시 <괴물> <태극기 휘날리며> <왕의 남자>도 보셨습니까. 보셨다면 당신은 이미 한 영화의 관객을 벗어나 더욱 커다란 문화공동체의 일원으로 편입되신 겁니다. 모두가 본 영화, 드라마를 미처 챙기지 못해 대화에서 소외된 경험이 있으실 겁니다.
군중은 행사를 더욱 크고 훌륭하게 만듭니다. 주말 밤이면 종종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축구 경기를 보곤 합니다. 이 리그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곤 하지만, 사실 하위팀 간의 경기는 그다지 재미가 없을 때도 많습니다. 차라리 K리그 라이벌팀의 경기가 훨씬 흥미진진하죠. 그럼에도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게 만드는 건 관중석을 가득 채운 군중의 함성입니다. 선수의 동작 하나에 기뻐하고 분노하는 수만 관중을 보고 있노라면, 패스 미스가 남발되는 형편없는 경기라 하더라도 꽤 재미있다는 착각에 빠져버립니다.
영화는 관객을 모으고, 많은 관객이 모인 영화는 더욱 그럴듯해집니다. 모든 대중문화가 그렇듯, 영화는 관객과 만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제작진이 의도치 않았던 대중의 반응이 나오고, 그 반응이 영화의 빈 자리를 채웁니다.
<과속 스캔들>을 보고 나서 우리는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요. 10대의 임신이나 싱글맘을 소재로 삼을 수 있고, 꿈을 이뤄나가는 소녀의 이야기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졸지에 할아버지가 된 30대 중반 가수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도 있겠죠.
물론 <과속 스캔들>은 그리 심각한 영화가 아닙니다. 차태현의 변함없는 유쾌함, 18세의 신인 박보영의 귀여움, 아역 왕석현의 능청맞은 연기를 108분간 즐기는 것만으로도 관람료가 아깝지 않습니다. 수백만명의 입가에 동시에 미소를 짓게 하는 영화가 그리 흔하던가요. 우리는 <과속 스캔들>을 함께 보면서 웃음과 행복의 공동체에 편입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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