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나간 후 관련 코멘트가 세 건 있었는데 하나는 박노자 교수가 언제까지 체류하느냐는 것이었고(기사에 이미 출국했다고 씀), 다른 두 개는 박노자 교수의 체형 변화에 관한 것이었다.
아시아는 위급하다. 정치·경제·문화 등 여러 측면에서 격변기다. 지금 예술은 무엇을 할 것인가.
‘간첩, 귀신, 할머니’란 주제로 열리는 미디어시티서울 2014(11월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은 ‘아시아’를 화두로 삼았다. 한국사회에 대해 비판적·성찰적 시선을 제공해온 노르웨이 오슬로대의 박노자 교수(41)가 미디어시티2014 강연을 위해 내한해 박찬경 예술감독(49)과 23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만났다.
-전시 어떻게 보셨습니까.
박노자=황홀경이었어요. 아직 이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적군파가 국제적인 무장투쟁을 한 배경을 설명한 작품(에릭 보들레르의 ‘시게노부 메이와 시게노부 후사코, 아다치 마사오의 원정과 27년간 부재한 이미지’), 북조선의 아프리카 지원 사업에 대한 작품(최원준의 ‘만수대 마스터 클래스’)을 유심히 봤습니다. 적군파는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한 채 해외 무장투쟁을 벌였어요. 이것이 정당하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야기 할 수 있다는 자체가 해방적입니다.
박찬경=전세계가 마찬가지지만 한국도 저항, 혁명에 대한 상상이 봉쇄된 상황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20세기의 급진성, 대담성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박노자=북조선은 1970년대 중국, 소련과 등거리 외교를 펼치면서 제3세계 해방운동을 지원했습니다. 오키나와의 반미 투쟁에도 호의를 표했고요. 북조선을 고립적인 국가라고 알고 있지만, 적어도 1970년대 유신정권보다는 훨씬 세계성이 강했습니다.
박찬경=이번 전시에 정부가 관심이 없어서 다행입니다.(웃음)
-역사의 맥락을 환기한 작품이 많습니다. 예술은 역사에 어떻게 다가서야 합니까.
박노자=역사는 ‘빅 픽쳐’(큰 그림)를 그립니다. 2차대전 당시 소련과 독일의 스탈린그라드 전투를 예로 들면, 역사학자는 ‘30만명이 죽었다’고 씁니다. 유가족의 느낌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죽고 죽이는게 역사니까요. 빅 픽쳐를 위해 감성적 맥락을 없앱니다. 반면 예술은 인간 내면의 느낌을 조명합니다. 이건 객관적인 빅 픽쳐와 차이가 있지만, 빅 픽쳐를 중요하게 보완합니다. 큰 그림으로 보면 적군파는 실패했습니다. 혁명은 없었고 일본 내에서도 고립됐습니다. 하지만 적군파 내면의 입장은 다를 겁니다. 경제동물로 만드는 권위주의 체제에서 자신을 해방시켰으니까요.
박찬경=과거의 중요한 유산이 무엇인지 떠올리고 역사의 대담성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올해 세월호 참사가 있었고 몇해 전에는 일본에서 3·11 대지진이 있었습니다. 절박함이 더 부각되는 시점 같습니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만난 박노자 교수와 박찬경 예술감독. /김정근 기자
박노자 교수는 이번 행사에서 ‘회색지대의 스파이들’이란 제목의 강연을 했다. 일본 작가 요네다 토모코가 출품한 ‘평행하는 타인의 삶’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요네다 토모코는 2차대전 당시 일본에서 소련 스파이 혐의로 처형된 독일인 리하르트 조르게의 활동 장소를 옛날 카메라로 담아냈다. 안개가 낀 듯 뿌옇게 찍힌 사진은 조르게의 정체성처럼 모호하다.
-조르게는 ‘간첩’이었습니까.
박노자=소련에서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영웅이었습니다. 물론 일본에서의 여자관계 같이 ‘필요 없는’ 부분은 자른 뒤 가르치지요.(웃음) 조르게는 ‘세계혁명가’이고 ‘반스탈린주의자’였습니다. 1930년대 말 소련의 소환 명령에 응했다면 더 일찍 처형당했을 겁니다. 오히려 일본이 그 사람의 처형을 유예한 셈입니다.
박찬경=일본 작가 중에서 이런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드뭅니다. 한국 뿐 아니라 일본도 심하게 우경화되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예술이 여기에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엔 권력이 억압했지만 이제는 스스로 검열합니다.
박노자=지금 일본이 어느 정도냐 하면, 얼마전 한 대학에서 교수가 위안부 강제징용에 대해 이야기하자 우익학생이 이를 신고했습니다. 결국 교수는 권고사직 당했고요. 일본은 외형적으로 민주주의 사회지만 사실상 재권위주의화 했습니다. 서울에 오기전 일본에 들렀는데 서점에서 ‘무섭다’고 느꼈습니다. <주한론>(誅韓論)이란 책이 있고 <군국주의가 일본을 구한다>는 책도 봤습니다. 정신병동 수준입니다. 도시샤 대학에서 독도에 대해 강연했는데 언제 우익이 쳐들어올지 몰라 다들 전전긍긍 했습니다.
박찬경=이번 컨퍼런스를 연 이유도 미술 작품만으로는 충분히 메시지를 전달하기 힘들다고 생각했기 떄문입니다. 미술 바깥의 연구자들을 통해서 외연을 넓히고 담론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작품들이 좀 어렵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박찬경=근래 열린 모든 비엔날레 중 가장 쉽습니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오브제를 보면 쉽다고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어렵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야기, 레퍼런스가 많으면 오히려 쉽습니다. 우리의 체험,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으니까요.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똑똑합니까. 홈쇼핑 하는 정도의 정성만 있으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박노자=지식대중이 출현했습니다. 한국은 유럽과 비교하면 유교적인 독서애호 국가입니다. 근대적 계몽주의, 교양주의의 전통도 강하고요. 지금 대중은 이 정도 수준의 전시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박찬경=심각한 이야기를 쉽게 할 수만은 없습니다.
박노자=간첩 역시 쉽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체입니다. 복합 지대에서 적대적 요소의 상호작용 가운데 아이덴티티가 만들어지니까요.
박 교수는 4일간의 짧은 체류 일정을 마치고 25일 노르웨이로 출국했다. 그는 노르웨이에 살면 “밥통 걱정이 없어서 좋다”고 했다. 그는 “한국에선 국가 검열은 북조선 얘기 빼고는 없지만, 모두들 (대학의) 교육 재벌 눈치 보느라 말을 못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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