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게임: 캣칭파이어>에서 전편과는 차원이 다른 악역을 보여준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무성의한듯 악랄하게 연기한다. RIP
제니퍼 로렌스가 주연한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2012)과 <헝거게임:캣칭 파이어>(2013)를 뒤늦게 봤다. 조만간 시리즈의 3편인 <헝거게임: 모킹제이 파트1>이 개봉한다.
이 시리즈가 미국에선 청소년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으나, 한국에선 그다지 좋은 성적을 거두진 못했다는 정도의 정보만 알고 있었다. 결론적으로 청소년에게 인기를 얻은 이유는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다.
우선 모르겠다는 이유. 영화가 상당히 시니컬하다. 독재국가 판엠은 부와 권력이 집중된 캐피톨을 중심으로 한 13개 구역으로 구성됐다 74년전 13개 구역이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됐고, 판엠은 이후 매년 각 구역에서 10대의 남녀 1명씩을 뽑아 최후의 1인이 남을 떄까지 싸우게 하는 '헝거 게임'을 연다. 헝거 게임은 인민들을 겁주는 동시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한다. 헝거 게임에 휘말린 캣니스 에버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서로 죽고 죽이는 게임은 생중계된다. 어디에 숨어 있어도 작은 카메라가 그들의 행동을 비춘다. 게임이 느슨해질 것 같으면 중앙통제센터에서 예기치 않은 재해를 마련한다.
독재국가라는 설정이 심상치 않거니와, 10대 청소년 중 마지막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싸워야하는 게임이라는 설정이 섬찟하다. 물론 일본에 <배틀 로얄>이 있긴 했지만, 기괴하고 잔혹한 설정의 영화가 넘치는 일본에서도 <배틀 로얄>은 논란을 일으켰다. 이런 영화를 청소년들이 좋아했다고?
생중계되는 살육 게임이란 설정은 현대 텔레비전의 리얼리티쇼를 연상케한다. 이제는 유행이 지나간 것 같지만, 미국산 리얼리티쇼는 평범한 사람이 연애하고 싸움하는 것까지 오락거리로 삼아 시청자들에게 제공했다. 이것이 연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지금 퇴근후 집에 앉아 빨래를 돌리면서 블로그에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세상에 공개하고 놀림거리로 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가 열렸다는 것이 중요하다. <헝거게임>은 극성이 강화된 <트루먼쇼>같다.
알겠다는 이유. <헝거게임>에도 삼각관계가 등장한다. 인기를 끈 프랜차이즈 영화에 흔히 등장했던 남편감 vs 애인감의 구도. <엑스맨> 시리즈에서는 남자다운 울버린 vs 다정한 사이클롭스의 구도였고, <트와일라잇> 시리즈에선 돈 많고 매너 좋고 다정한 뱀파이어 vs 몸 좋고 일편단심인 연하의 늑대인간 구도였다. 이들은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여자를 사이에 두고 일대 격돌을 벌인다.
고향의 남편감과 외지의 애인감(위로부터)
<헝거게임>에서는 캣니스를 두고 고향에 있는 듬직한 친구 게일과 헝거게임에서 생사를 같이한 피타가 대결한다. 캣니스는 피타와의 연애가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게일에게 강변하지만, 생사를 오가는 위기의 순간에 캣니스의 마음도 오락가락 했다는 걸 관객(과 독자)은 모두 안다. (이 리얼리티쇼의 시청자들은 캣니스와 피타의 러브스토리를 좋아한다)
피타는 처음엔 별 볼 일 없는 빵집 아들처럼 나오더니 극이 진행될수록 멋있어진다. (솔직히 난 별 볼일 없는 피타가 게임 초반부에 죽을줄 알았다) 그러면서 자신이 캣니스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남자란걸 증명한다. 피타를 멋있게 만드는 또다른 이유는 그가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치 종족의 숙적 뱀파이어에게 사랑하는 여자를 선점당했으나 그녀가 마음을 돌릴 때까지 그저 꾹 참을뿐인 <트와일라잇>의 늑대인간처럼.
<윈터스본>(2010)에서 파릇한 싹을 보인 제니퍼 로렌스는 <헝거게임> 시리즈를 통해 자신이 미국(과 전세계) 영화 관객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여배우임을 입증했다. 그 사이 독립영화풍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에 브래들리 쿠퍼와 나왔고 최근 <엑스맨> 시리즈에선 미스틱으로 등장했지만, 제니퍼 로렌스는 <헝거게임>이 마치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영화처럼 만들어버렸다. 아름다운 광대뼈, 당당한 눈빛, 관객이 믿을만한 메소드 액팅. 제니퍼 로렌스는 리즈 위더스푼, 스칼렛 요한슨과는 다른 차원의 여배우다.
화살 쏘면 안 피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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