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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가족을 사랑하는 ‘21세기 마초’

제라드 버틀러(40)는 지금 가장 뜨거운 ‘마초’입니다. 멜 깁슨과 러셀 크로가 늙거나 뚱뚱해진 사이, 버틀러는 비릿한 수컷 냄새를 물씬 풍기며 스크린 한가운데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버틀러가 선배 마초들과 가장 다른 점은, 그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다음달 10일 개봉예정인 <모범 시민>은 ‘가족사랑형 마초’로서의 버틀러의 모습이 잘 드러나는 영화입니다. 가족과 함께 평화로운 저녁 시간을 보내던 클라이드(버틀러)는 난데없이 들이닥친 2명의 무장강도에게 아내와 딸을 잃습니다. 범인은 곧 붙잡히지만, 둘 모두에게 유죄 판결을 받게 할 자신이 없던 검사 닉(제이미 폭스)은 유리한 증언을 받는 대가로 한 명의 죄를 경감해줍니다. 분노한 클라이드는 모습을 감춥니다. 10년 뒤 다시 나타난 클라이드는 범인은 물론 부조리한 사법 체계 전반에 대해 복수를 계획합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죽인 사람의 숫자만 보면, 클라이드는 무장 강도보다 더한 연쇄 살인마입니다. 계획에 방해가 되는 사람은 검사든 경찰이든 판사든 동료 수형자든 가리지 않고 죽입니다. 그 재주가 기발해 감옥에 갇힌 뒤에도 살인을 계획하고 진행합니다. 버틀러는 <300>에서 가죽 팬티에 망토만 걸친 고대 스파르타의 왕을 연기함으로써 잘 다져진 상반신을 2시간가량 자랑한 적이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범 시민>에서도 한 차례 ‘팬 서비스’를 합니다. 경찰이 자신을 체포하러 오는 와중에 스스로 옷을 모두 벗은 뒤 잡혀갑니다. 물론 이 모든 광기의 근원에는 죽은 아내와 딸에 대한 사랑과 집착이 있습니다.


버틀러는 전작에서도 가족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출세작 <300>에서는 왕비와의 불타는 사랑, 아들에 대한 엄한 교육열을 보여줬습니다. <P.S. 아이 러브 유>에선 불치병으로 먼저 떠날 것을 안 뒤, 남겨진 아내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 생전에 놀라운 계획을 짜둔 남편이었습니다.


멜 깁슨과 러셀 크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여자를 뜨겁게 사랑했지만 언제 떠날지 몰라 불안을 안겨주는 ‘나쁜 남자’였습니다. 대표작인 <리셀 웨폰> 시리즈의 깁슨을 떠올려 봅시다. 살짝 ‘맛이 간’ 듯한 그의 삶은 안정된 가정을 이룬 동료 형사 대니 글로버와 확연히 대조됐습니다. <글래디에이터>의 크로는 가족을 사랑했지만, 그보다 더 사랑한 것은 로마라는 나라와 황제였습니다. 난봉꾼이었던 <아메리칸 갱스터>, 정신분열에 빠진 천재 수학자였던 <뷰티풀 마인드> 역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일본의 대표적인 마초 배우이자 감독인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남들이 보지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마초에게 가족이란 꽤 신경쓰이는 존재인가 봅니다.


하지만 가족 따윈 연연하지 않은 채 ‘큰 뜻’만을 바라보는 옛날 사나이의 시대는 갔습니다. 우리 선조들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 이르지 않았습니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도 행복하게 못해주는 이가, 어찌 온 나라 나아가 전 세계 사람을 행복하게 한단 말입니까. ‘큰 뜻’은 하늘 저편이 아니라, 추운 겨울밤 따뜻한 안방 한구석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전 1000년 후에도 이름을 남기는 위인이 되기보단, 오늘 저녁 가족들에게 환영받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