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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에 대한 몇 가지 생각






<화장> 시사회를 다녀왔다. 지금 이 영화에 대해 총체적인 감상을 적기는 어렵다. 그저 짤막한 단상 정도. 스포일러 포함. 





1. 오상무(안성기)가 똥을 싸는 아내(김호정)를 욕실에서 씻어주는 장면은 정확하다. 빼고 더할 것이 없다. 알려진 바로는 임권택 감독은 김호정에게 하반신을 노출하고 찍어야 한다는 사실을 당일에서야 말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방식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배우와 미리 상의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면에는 노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다른 여지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똥오줌을 가리면서 사람이 된다. 아이는 똥오줌을 가릴 때쯤 서서히 자아를 갖춘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그래서 어른이 똥오줌을 못가린다는 것은 그의 신체적 능력이 아이 수준으로 퇴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신의 처지를 알만한 어른으로선 감내하기 힘든 일이다. 미하엘 하네케의 <아무르>에서 병을 앓던 아내도 침대에서 똥을 싸는 순간 그렇게 절규했다. 평생 우아하고 지적인 삶을 살았던 서유럽 여인이었기에 더더욱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다시 <화장>으로. 오상무와 딸은 병실에서 막 사온 떡볶이와 순대를 뜯는다. 그때 병상의 아내는 저도 모르게 똥을 지린다. 딸은 어쩔줄 몰라하더니 곧 화장실로 가 오열한다. 오상무는 묵묵히 아내의 성인용 기저귀를 간다. 바지를 내리고 기저귀를 빼고 휴지로 닦고 새 기저귀를 채우고 바지를 올린 뒤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방향제를 뿌리기까지 조금의 주저함, 망설임도 없다. 아마 안성기와 김호정은 이 장면을 매우 여러번 연습했을 것이다. 아내는 이때쯤부터 확연히 쇠약해진다. 욕실에서 하반신을 드러낸 채 남편에게 뒤를 맡기는 장면은 그 절정이다. 아내는 스스로 씻겠다고 고집을 부리다가도 씻기는커녕 스스로 몸도 못가눌 사정임을 노출한다. 다 씻었다 싶을 때 아내는 다시 똥을 지린다. 그리고 어눌한 발음으로 미안하다며 오열한다. 중한 병, 다가운 죽음 앞에 몸과 마음이 모두 허물어진 인간을 이 장면은 정확하게 드러낸다. 비참하고 사실적이다. 병구완을 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메멘토 모리'라고 속삭이는 장면. 죽음은 그렇게 티를 내며 찾아온다. 부끄러움도 지저분함도 모른 척 하고.  



간결하고 정확한 장면. 




2. 원작인 김훈의 소설 <화장>을 읽은 적이 있다. 주인공의 마음이나 작가의 시선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힘들었다. 영화 <화장>은 세부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원작의 줄거리를 따른다. 그러나 영화는 소설에 비해 훨씬 쉽게 머리와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임권택이 가진 시선의 깊이, 안성기의 연기에 힘입은 바 컸을 듯하다. 사실 안성기는 최근 인상적인 연기를 보인 적이 없다. 그것은 한국의 주류, 젊은 감독들이 이 배우를 다소 기능적으로 기용해왔다는 사실과도 관련 있다. 하지만 <화장>에서 안성기는 자신이 가진 배우로서의 역량을 숨김 없이 발휘한다.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지만, 주름이 가득한 얼굴은 가만히 많은 이야기를 한다. 오상무는 따뜻한 척하면서도 실은 차가운 인물이다. 한국에 마냥 뜨거운 배우는 많지만(그리고 이런 배우가 연기 잘하는 배우로 인식되지만), 안성기는 차가움을 잘 표현하는 배우다. 한국 배우들은 차가움을 표현할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하는 편인데, 안성기는 임권택이 준 기회를 제대로 살렸다. 사실 안성기 말고 이 나이대의 배우 중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배우는 생각나지 않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남자 안성기. 자신의 행동에 대한 1%의 후회가 깃든 표정. 


3. 오상무가 추은주를 무용수의 얼굴에 대입하거나, 죽어가는 아내와의 정사 장면에서 떠올리는 장면은 요즘 감각으론 좀 구식으로 보인다. 페데리코 펠리니라면 망설임 없이 찍었겠지만, 지금은 2015년이므로 다른 표현 방법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떠오르진 않는다. 임권택도 그렇게 직접적인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오상무의 욕망이 그렇게 직접적이었으므로. 


4. 영화 중반부까지 유일하게 적응하기 힘들었던 요소는 김수철의 전자 음악이었다. 그러나 바삐 전화를 걸면서 걸어 내려오는 오상무를 보여주는 엔딩에선 그마저 어울렸다.


5. 오프닝의 으리으리한 장례 행렬은 종결부에 대단한 반전으로 작동한다. 난 이 장면에 어떤 혐의를 두고 의심했다. 서구의 평론가들이 장이머우, 첸카이거에게 두는 혐의와 비슷한 종류다. 그러나 임권택은 내 뒤통수를 쳤다.  



임권택이 놓은 함정같은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