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적이고 재치있는 두 분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엄청난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지만, 왜 하는지 모를 일들이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우주 탐험이 그런 종류의 일이다. 실생활에 도움을 주지 않고, 뚜렷한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결과가 나온다 해도 평범한 사람의 눈으로는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주 탐험은 현대 예술과 비슷하다.
우주 탐험의 의미를 예술적으로 해석한 작품들이 나란히 선보이고 있다. 5일 개봉한 <망원동 인공위성>은 세계 최초로 개인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아티스트 송호준씨를 주인공으로 삼은 다큐멘터리다. 송씨는 인공위성 발사 비용 1억원을 충당하기 위해 티셔츠 1만장을 파는 동시, 까다로운 로켓 제작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에서는 ‘우주생활-NASA 기록 이미지들’전이 열리고 있다. NASA(미 항공우주국)의 기록 이미지와 과학, 기술을 소재로 한 현대미술 작품들이 전시중이다. <망원동 인공위성>의 김형주 감독(38)과 ‘우주생활’전을 기획한 이영준 계원예술대 교수(54)가 우주, 기계, 인간의 삼각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일민미술관에서 만난 김형주 감독(왼쪽)과 이영준 교수. /김기남 기자
-우주 이야기는 왜 했나.
이영준 “평소 나사 홈페이지를 들락거리며 사진을 다운받곤 했다. 나사는 홍보를 중요시해 사진들에 저작권을 걸어두지 않았다. 이 사진들에 시각적으로 매혹됐다. 내가 원래 예쁘면 못견딘다. 예뻐하는 대상이 기계라는 점이 남들과 다를 뿐이다.”
김형주 “2010년쯤 아이폰이 대중화됐을 때 ISS(국제우주정거장)와 실시간으로 트위터를 할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지구 바깥으로 뻗어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로켓 만드는 소녀들에 대한 픽션을 구상했다. 배우로는 투애니원을 캐스팅하고 싶었다.(웃음) 자료를 찾는 과정에서 개인 인공위성 발사를 준비하는 송호준씨 이야기를 접했다. 소녀들은 왜 로켓을 쏘고, 나는 왜 영화를 찍고, 송호준씨는 왜 인공위성을 만들까.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도 왜 즐겁지 않을까. 어쩌면 ‘왜 하느냐’는 질문 자체가 잘못일 수도 있다.”
이영준 “내겐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산이 거기 있으니까 간다’고 하지만, 사실 산에 가는 것도 뚜렷한 이유가 있다. 난 기계비평가로서, 기계의 작동 방식을 알고 싶다. 송호준씨에게도 목표가 있을 것이다.”
김형주 “그러나 그 목표를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인간관계, 돈, 명예 등 어느 하나를 대답하는 순간 그걸 이용하는 시스템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영준 "이우환 같이 성공한 아티스트는 '왜 하느냐'는 질문에 퍼포먼스를 한다. 거짓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게 답한다."
김형주 "그만큼 질문이 많기 때문에 퍼포먼스를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이영준 "우문에 대해 적당히 때우기?"
김형주 "존재를 그대로 보는게 아니라, 그 뒤에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송호준씨는 인공위성을 쏘아올렸지만, 위성신호는 잡아내지 못했다. 이건 실패인가 성공인가.
김형주 “관객의 관점도 여러가지다. ‘발사했으니까 성공’이라는 사람, ‘신호를 못잡았으니 실패’라는 사람, ‘티셔츠 1만장 못팔았으니 실패’라는 사람…. 난 성공과 실패의 중간 단어가 있으면 좋겠다.”
이영준 “기술적으로는 실패, 예술적으로는 성공? 리움에서까지 전시했으니까. 사실 작가의 욕망은 진행중이다. 기술적으로는 신호를 잡아야 성공이다. 그러니 지금은 돌멩이를 쏘아올린 것과 차이가 없다. 하지만 나로호도 마찬가지다. 두 번이나 실패한 뒤 발사했지만, 지금 나로호가 뭐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런 관점에선 나로호도 돌멩이랑 차이가 없다.”
-우주 탐험은 실패의 위험이 크다. 그래도 계속 하는 이유는 뭘까.
이영준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도 우주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지금 세종로에 앉아있지만, 이곳 역시 우주의 일부다. 우주는 집 우(宇), 집 주(宙)를 쓴다. 우주를 안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집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다. 과학자들은 외계생명체의 존재 여부가 2~3년 내로 밝혀진다고 한다. 텔레비전 드라마를 봐도 ‘출생의 비밀’을 알기 위해 지지고 볶는다. 사람은 내가 사는 곳이 어딘지,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알고 싶어 한다.”
김형주 “우주라는 매크로한 세계와 스마트폰이라는 마이크로한 세계가 교감한다는 사실이 짜릿하다. 전자렌지, 선글라스도 우주 탐험을 위한 기술개발 과정에서 나왔다.”
NASA. 초음속 실험용 비행기 X15의 승무원들
-송호준씨는 '예술가'를 자처한다. 예술가 맞나?
김형주 "그래서 '새로운 생각을 알려주는게 예술이에요'라는 큐레이터의 설명을 다큐에 넣었다. 그런데 송호준씨 프로젝트에 백화점, 정부 등은 반응하는데, 미술계에서는 리액션이 없었다. '미술계는 외딴 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다큐는 주고받는 관계를 중요하게 여겼기에,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못담았다."
이영준 "송호준씨가 순수한 엔지니어였다면 영화를 찍었을까?"
김형주 "물론이다. 하지만 그가 산 속에 있었다면 안 만들었다. 산 속에서 인공위성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세상에 이런 일이' 나와야겠지."
이영준 "인공위성은 사회적 산물이다. 산 속에선 만들 수도 없다."
-우주 산업에는 최첨단 기술이 집약돼있다. 기술은 예술, 삶에 점점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김형주 “신기술에 대한 허상을 경계하는 편이다. <아바타>가 나온 뒤 정부가 3D 산업에 엄청난 돈을 지원했다. 안동미디어센터에 가면 3D 영화 전용관이 있다. 그 앞에 아바타 인형도 세워져 있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면 주민들이 찍은 6미리 영화를 상영한다. 텔레비전 업체들이 3D를 포기하면서 산업도 다 죽었다. 자고 일어나면 새 기술이 나오니, 매뉴얼 읽다가 청춘이 다 간다. 하지만 기본이 무엇인지, 중요한 질문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이영준 “난 미디어아트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북한산의 바위를 보라. 난 그게 최고의 조각 작품이라고 느낀다. 바람이 깎고, 벼락이 구멍낸 최고의 기술도 보여주지 않는가. 외국 미술관 가면 100년 넘은 고흐 그림이 그렇게 선명할 수 없다. 고흐는 아크릴릭 물감으로 오늘날 LED가 한 것을 선취했다. 작가들이 첨단 기술을 쓰려고 하면 할수록 뒤처질 수밖에 없다. 나사의 기술을 따라갈 수 있겠는가.”
조춘만, 석유화학, 화이버베이스 잉크젯프린트,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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