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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영화는 묻는다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어린이 관람불가?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무서운 영화다. 이걸 애들 보라고 만들었다니. '세상은 이렇게 끔찍하단다'라고 미리 말해줄 필요가 있나. 조앤 롤링, 나빠요!




지금은 ‘어둠의 시기’입니까.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1> 도입부의 마법부 장관은 그렇게 말합니다. 이 역을 맡은 빌 나이히는 <러브 액츄얼리> 속 한물간 로커의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지 않습니다. 웃음기를 잃어버린 건 이 영화 속 모든 인물이 마찬가지입니다.

관객은 이미 <마법사의 돌>이나 <비밀의 방> 시절의 귀엽고 똘망똘망한 해리 포터를 기대하진 않습니다. 4편 <불의 잔>을 즈음해서 해리 포터의 세계는 차츰 어두워졌습니다. 그래도 그때는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이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사춘기 청소년들이야 워낙 광폭하거나 우울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시리즈 마지막 편인 <죽음의 성물>에서 문제는 아이들이 아니라 세상입니다. 전편인 <혼혈 왕자>에서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지키던 덤블도어 교장이 사망한 후, 세상은 사악한 볼드모트 일당에게 지배당합니다. 볼드모트 일당은 호그와트와 마법부를 장악하고, 머글(인간)을 살해하고, 머글과 마법사 사이의 ‘잡종’을 내쫓습니다. 약자, 소수자, 이방인을 배척한 채 ‘순수한 자’들이 힘으로 지배하는 세상을 꿈꾼다는 점에서 볼드모트의 이념적 성향은 ‘파시즘’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볼드모트의 정책은 유대인, 동성애자, 집시들을 내쫓거나 죽인 나치들을 연상시킵니다. 2차대전이 끝난 지도 65년이 지났지만, 영국을 포함한 유럽은 여전히 파시즘을 경계하고 있는 듯 보입니다.



판타지는 환상에 그치지 않습니다. 지상에서 제작된 좋은 판타지는 언제나 지상에 한 발을 붙이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의 한가한 시간을 앗아가는 킬링 타임 판타지쯤으로 여겨졌던 <해리 포터> 시리즈는 어느덧 자기 나름의 진지한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조앤 롤링의 원작을 별다른 축약 없이 풀어낸 <죽음의 성물1>은 시리즈 중 가장 어둡습니다. 해리, 헤르미온, 론은 시시각각 추격의 고삐를 죄어오는 볼드모트 일당에게 저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곳곳을 떠돕니다. 이들에겐 볼드모트에게 대항할 힘도, 도와줄 어른도 없습니다. 1부는 그렇게 암울하게 끝납니다. 영화는 ‘전체 관람가’ 등급을 받았지만, 한 조각 희망도 없는 암울함 때문에 어린이 관객은 울음을 터뜨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의 성물2>는 내년 여름에 개봉합니다. 우리는 이 어둠의 시기를 참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볼드모트의 권력을 등에 업은 개들에게 들키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2부에서 해리는 볼드모트를 이길 수 있을까요. 소설 원작의 결말을 얼핏 들은 바로는 그런 것도 같습니다. 그러나 판타지 바깥 세상에서도 같은 결말이 맺어질지는 누구도 장담 못합니다. 희망은 의지이지만, 의지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 생각에 미치면, 그냥 해리 포터의 세계로 도망가고픈 생각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