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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세계

 

줌파 라히리의 책 두 권을 잇달아 읽다. 사실 다 읽은 지 며칠이 지났지만, 라히리에 대해 몇 자라도 적어놓고 싶다. 먼저 읽은 책은 신간 '내가 있는 곳'(마음산책)이었다. 인도계 영국인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라히리는 어느날 갑자기 이탈리아어를 배워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곤 한다는데, '내가 있는 곳'이 이탈리아어로 쓰여진 장편소설이다. '장편소설'이라고는 했지만, 1인칭 화자의 시점으로 낯선 도시에 머물며 얻어낸 짤막한 이야기들이 '보도에서' '길에서' '사무실에서' '수영장에서'와 같은 제목을 단 채 이어진 연작 형태다. 감각적이고 투명하고 단순한 문체로 삶의 감각을 전한다. 작가가 모어보다 덜 익숙한 이탈리아어로 썼기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스타일이 그러한지 알 수는 없었다. 어떤 부분에선 한때 내가 열심히 읽었던 뒤라스의 문체가 느껴지기도 했다. 좋았다는 얘기다. 

 

줌파 라히리(1967~)

내친김에 2013년 펴낸 두번째 장편 '저지대'(마음산책)를 구매했다. 그런데 두께부터가 당황스러웠다. '내가 있는 곳'은 200쪽이지만, '저지대'는 548쪽이다. '내가 있는 곳'이 현대의 작가(혹은 교수)를 주인공으로 한다면, '저지대'는 1960년대 인도 낙살라이트 운동의 전조를 다루면서 시작한다. 낙살라이트란 인도 낙살바리 지역을 중심으로 한 마오쩌둥주의 운동으로, 무장봉기와 반정부 테러를 서슴지 않는다. 

그래서 초반 4분의 1까지는 낯설었다. (여기 낙살라이트에 관심 있었던 분?) 하지만 라히리는 낙살라이트 운동의 전개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다. 이야기는 수바시와 우다얀이라는 형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수바시는 내성적이고 차분하지만, 우다얀은 활달하고 적극적이다. 수바시가 학업에 열중해 미국으로 유학가 해양학 박사가 된 사이, 우다얀은 인도에 남아 낙살라이트 운동에 투신한다. 우다얀의 지난한 투쟁기가 펼쳐지려나보다 하는 순간, 우다얀은 정부군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아직 소설 초반이다. 이제 라히리는 이야기의 방향을 튼다. 수바시는 우다얀의 아이를 임신한 처제 가우리를 미국으로 데려간다. 명목상 결혼으로 동생의 아이와 아내를 책임지려 한다. 미국에서 벌어지는 수바시, 가우리, 그리고 가우리의 친딸이자 수바시의 양딸인 벨라의 이야기가 이후에 펼쳐진다. 이제부터는 인도의 고된 현대사와 큰 관계가 없다. 

아니, 있다. 상처는 어디로 사라지지 않으니까. 멀찌감치서 낙살라이트 운동을 지켜본 수바시에게도, 신혼에 남편을 잃은 가우리에게도, 낙살라이트가 무엇인지, 수바시가 양아버지인지 모르고 자란 벨라에게도, 역사와 사회가 할퀸 흔적은 남았다. 라히리는 개인에게 미친 역사의 궤적을 세 사람의 기묘한 관계와 요동치는 마음으로 그려보인다. 엄마 가우리가 갑자기 가출한 뒤, 청소년기 들어 마음의 혼돈을 겪는 벨라는 상담가 닥터 그랜트를 만난다. 그리고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랜트 선생님은 그 감정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겠지만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다. 벨라가 어디를 가든 그 감정은 풍경의 일부를 이룰 거라고 했다. 벨라의 생각 속에 엄마의 부재가 항상 존재할 거라고 그랜트 선생님은 말했다. 엄마가 왜 떠났는지에 대한 답은 결코 찾지 못할 거라고 벨라에게 말했다. 

수바시가 왜 동생의 아내 가우리를 미국으로 데려왔는지, 왜 가우리가 별다른 설명도 없이 아이를 남겨두고 가출한 뒤에도 별다른 원망을 하지 않는지, 독자는 알 길이 없다. 다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고, 그 짐작이 이끄는 수바시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을 뿐이다. 엄마가 떠난 뒤 청소년기의 고비를 넘긴 벨라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직장을 갖지 않고 미국을 떠돈다. 아니 직장을 갖지 않았다는 건 편견어린 말이다. 벨라는 농촌 운동, 환경 운동 비슷한 흐름에 몸을 얹었다. 벨라의 선택도 이해할 수 있다. 역시 가장 공감이 어려운 건 가우리다. 어찌 보면 은인이나 마찬가지인 수바시를, 그리고 친딸을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 철학을 공부하며 독자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라히리는 가우리의 선택에도 논리적인 감정의 길을 만들었다.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 감정, 역사와 세월이 할퀸 상처가 가우리를 그리로 이끌었다. 

'저지대'의 사람들은 애초의 기대와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낸다. 가혹한 삶이었지만 그로부터 물러서지 않는다. 어찌 보면 우연 같은, 알고 보면 필연인 선택으로 삶을 이어간다. 소설 속 사람들은 이해못할, 낯선, 기괴한 선택을 할 때가 있다. 그걸 그냥 이상하고 충격적으로 그려내는 작가가 있고, 충분히 논리적으로 그려내는 작가도 있다. 물론 라히리는 후자다. 비논리적인 삶을 논리적으로 직관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