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쿠하타 유스케의 논픽션 '극야행'(마티)을 읽다. '극야'란 말이 낯설었는데, 대략 '백야'의 반대말이다. 북극 지역에서 해가 뜨지 않고 몇 달이고 밤만 계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논픽션 작가이자 탐험가인 가쿠하타는 북극 지역의 극야를 홀로 걷기로 하고 4년에 걸쳐 차근차근 준비한다. 부분적으로 직접 걸어 지형을 익히고, 곳곳의 창고에 식량과 물품을 저장한다. 100여년 전에야 북극점, 남극점에 가장 먼저 도달하려는 경쟁들이 있었지만, 이제 지구 표면에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고, 지구에 기록되지 않은 곳도 없다. 이제 탐험가는 어디를 가야할까. 가쿠하타는 극야행의 의미를 다음처럼 정의한다.
탐험은 요컨대 인간 사회 시스템 바깥으로 나오는 활동입니다. 옛날에는 탐험의 목적이 지도의 공백을 채우는 것이었죠. 그때는 지도가 당대의 시스템이 미치는 범위를 도식화한 매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지도에는 공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탐험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했습니다. 그때 극야가 떠올랐습니다. 이번 탐험은 미답의 땅을 개척하는 것이 아닙니다. (...)
매일 태양이 뜨는 건 얼마나 당연한가요. 우린 태양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태양이 뜨지 않는 세상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죠. 그 점에서 저는 극야 세계가 미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120일 동안 밤뿐인 세계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극야의 세계로 나간다면 현대인이 잃어버린 자연과의 연결 고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쿠하타가 북극의 극야를 80일간 헤맸다고 해서 어딘가에 '세계기록'으로 남을 리는 없다. 애초에 목적지가 불분명한 여정이었으니까. 가쿠하타는 그저 스스로 세운 '탐험'의 정의에 따라 북극을 떠돈다. 누가 뭐라하든, 스스로 설정한 장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인생의 한 절정기와 많은 돈을 투자한다. (가쿠하타는 극야행이 자신 인생의 절정기에 도전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탐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가쿠하타는 자기가 세운 목적을 이뤘을까. 쉬웠다면 책이 재미있을리 없다. 사람도 없고 불빛도 없는 끝없이 광활한 밤의 세계에서 인간의 감각은 혼돈에 빠진다. 작은 언덕이 거대한 산맥처럼 보이고, 바위 덩어리가 사향소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쿠하타는 몇 번이나 지역을 걸어 눈과 발로 익혔지만, 어둠은 여전히 가쿠하타를 속인다. 가쿠하타는 일부러 GPS도 가져가지 않았다. 특수제작한 육분의는 극야행 초반부에 잃어버렸다. 나침반과 별의 위치에 의존해 대략적인 방향을 잡고 걸었다. 빛이 없어 공간감을 상실한 순간, 가쿠하타는 자신의 실체를 잃어버린다.
개 한 마리가 그의 유일한 동행이다. 어둠 속 눈보라 속에서 헤매다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무렵 식량 저장고를 발견하지만, 북극곰이 털어간 지 오래다. 절망에 빠진 가쿠하타는 생존의 방법을 모색하다가 결국 마지막에는 개를 잡아먹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물론 개도 사료를 충분히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상태지만, 어쩔 수 없다. 책 후반부는 가쿠하타가 개를 잡아먹는 최후 수단만은 사용하지 않기 위해 야생동물 사냥에 전력하는 과정을 그린다. 물론 어두컴컴한 빙판 위에서 사냥이 잘 될 리는 없다.
극한 고생이 이어지는 후반부는 처절하지만, 의외로 유머러스한 대목도 많다. 다 떠나서, 개 한 마리와 썰매를 번갈아 끌며 끝없는 어둠 속의 북극 지대를 헤매는 풍경만큼은 인상 깊다. 그런 체험을 들려준 사람은 아마도 없었으니까. 상상만해도 두렵고 외롭고 우울한 여정이다. 이런 탐험을 생각해내 실행하는 '예외적 인간'이 나타나는 사회도 대단하다. '인도방랑'의 후지와라 신야, 북극 사진가 호시노 미치오도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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