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잠실에 살기 시작한 건 4년전이다. 태어났을 때는 한강변의 어느 아파트에, 유치원 무렵엔 반포의 어느 아파트에 살았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대구에서, 대학과 대학원, 사회 초년 시절엔 신촌, 이대, 홍대 부근을 맴돌았다. 어느덧 결혼을 할 시기가 됐고,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의 신접 살림은 잠실의 한 오래된 아파트에 차렸다.

아기가 생기면 알록달록한 물건들이 무채색 공간을 조금씩 점유한다.

결혼을 하기 보름전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다. 아직 가구가 다 들어오지 않아 휑한 느낌이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이 집으로 돌아왔다. 총각 시절의 로망이었던 아내와 함께 큰 화면으로 디비디 보기도 종종 했다. 그리고 아기를 가졌다. 어떤 아내들은 출산 전후에 친정에서 조리를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러지 않았다. 아내는 이 집에서 진통을 했고, 잠시 인근의 친정에 들렀다가 나와 합류해 병원으로 향했다. 3일간의 입원과 2주간의 조리원 기간 동안, 난 긴장하면서 빈 집을 지켰다. 그리고 눈이 많이 쌓였던 지난해 1월 초, 조리원에서 갓 나온 아내는 조심스레 아기를 안고 뒤뚱뒤뚱 걸어 이 집으로 돌아왔다. 

아기는 자랐다. 아직 엄마, 아빠 정도밖에 못하지만, 활동량은 많다. 의자를 계단 삼아 식탁 위에 올라가는가 하면, 문을 열고 베란다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면 문을 마구 쳐대며 열어달라고 성화다. 머리털도 몇 가닥 없이 꼬물거리던 생명은 어느덧 가끔 이발을 하고, 부모와 눈을 맞추고,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고, 부모가 빵이나 과일을 먹으면 옆에 서서 달라고 떼쓰는 인간이 됐다. 가끔 유모차에 태우면 15분 정도 걸리는 올림픽 공원으로 나가기도 했다. 집에서는 곧잘 걷지만 바깥에선 땅에 발을 붙이고 서있던 아기는, 그곳 잔디밭에서 드디어 발을 뗐다. 

결혼한 지 만 4년, 아기가 태어난지 17개월이 지났다. 이틀 뒤면 새 집으로 이사를 간다. 구는 같고 동만 약간 다른, 이 집에서 걸어서도 갈 수 있는 또다른 아파트다. 그러나 앞으로 이 집쪽으로 올 일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이 집은 내 활동반경과 겹치지 않는다.

집을 구하느라 고생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 사이 전세가 많이 올랐다. 돈을 마련할 방법에 대해 짧은 고민의 기간이 있었다. 이사날짜가 맞지 않아 집주인과 전화로 옥신각신하기도 했다. 어영부영하다가 이사를 못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아무튼 이제 그런 순간은 다 지나갔다. 4년간 이곳에 잔뿌리를 내렸던 우리의 삶을 어떻게 들어 옮길 것인지만 생각하면 된다. 그러는 사이 추억의 가지 몇 개는 부러져 나갈 것이고, 잔뿌리 몇 가닥도 잘릴 것이다.

세탁기의 은퇴경기

신혼 때 사지 않았던 세탁기와 냉장고도 새 집에 들이기로 했다.
방금 15년 가까이 썼던 통돌이 세탁기의 은퇴식이 있었다. 동생과 이대 부근에서 자취를 하던 시절부터 썼던 것이니 그쯤 됐다. 이제는 무슨 뜻인지도 모를 '퍼지 기능'이 있는 8kg짜리 세탁기다. 새 세탁기를 사러 가니 8kg짜리는 찾기도 어려웠다. 15년전부터 나와 내 동생의 옷을 빨았고, 4년전부터는 나와 아내의 옷을 빨았고, 1년 반 전부터는 아기의 오줌 묻은 옷이나 토한 가제 수건까지 빨아낸 힘좋은 세탁기다. 빨래를 많이 넣으면 덜컹거리는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큰 고장 없이 잘해냈다. 좀 전에 선선한 초여름밤 바람이 드는 베란다에 널어놓은 나와 아내의 빨래를 마지막으로, 그 푸르스름한 세탁기는 어딘가로 보내져 운명을 다할 것이다.

아기의 곤충 자석 놀이를 붙인 냉장고. 의외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함께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하얀 냉장고는 한 번 고장난 적이 있다. 서비스센터에 전화했더니 간단한 조치 방법을 알려줬다. 음식을 좀 빼고 그냥 둬보라는 것. 그랬더니 정말 다시 돌아갔다. 많은 얼음을 얼렸고, 잘라놓은 수박을 간직했으며, 문 뒤쪽으로는 오래된 음료수와 조미료를 보관했다. 야채는 가끔 썩어나가기도 했다. 그 품이 넉넉지 못해 살림을 본격적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답답한 냉장고겠지만, 그래도 결혼 전까지 쓰면서 맥주나 콜라를 시원하게 하는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냉장고 역시 화요일이면 어딘가로 사라진다.

귀중품이나 잃어버리기 쉬운 작은 물건을 따로 챙겨 처가에 보관한 것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이사 준비를 하지 않았다. 요즘은 포장 이사 업체에서 다 해준다고 한다. 그래도 결혼 초기와 출산과 양육에 얽힌 추억의 흔적들은 깔끔하게 포장돼 옮겨지지 않을 것 같다.

모레 밤이면 난 낯선 곳에서 자고 있겠다. 그 낯선 곳은 곧 낯익은 곳이 되겠다. 난 태어난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농경사회풍의 삶을 동경해왔다. 내가 좋아하는 영국 소설 <하워즈 엔드> 역시 그런 삶을 그리워한다. 그러나 101년 전에 쓰여진 <하워즈 엔드>는 그런 삶이 쉽지 않다는 사실 역시 알려준다.

어린 시절 읽은 어떤 SF에는 이동하는 괴기 식물이 나온다. 이름이 '트리피드'였던가. 며칠 동안 트리피드가 되야겠다. 그리고 얼마 뒤부터 안심하고 뿌리를 내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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