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시절의 일이니 벌써 10여년 전이다. 난 대학원생 및 외국인학생 전용 기숙사에 있었는데, 오리엔테이션에서 기숙사 책임자가 몇 가지 당부사항을 말해주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대학생들이 가끔 술 마시고 난동을 부리는 건 마찬가지인 듯한데, 설사 그렇다 해도 화장실을 너무 더럽게 사용하진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토해놓지 말란 얘기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For the dignity of a custodian"

말하자면 "관리인(환경미화원)의 존엄을 위해"란 뜻이다. 난 충격을 받았다. 공공장소를 더럽게 사용해선 안된다는 유의 '공중도덕'이야 한국에서도 '바른생활' 시절부터 누누히 가르치는 것이지만, 공중도덕이란 것이 그 뒷처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존엄에도 연관돼 있다고는 결코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런 이야기를 한 건 며칠전 빵가게에서 본 일 때문이다. 내가 자주 들러 아침용 빵을 사곤 하는 그곳은 젊은 여직원들이 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난 고른 빵을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 서 있었는데, 한 중년 남자가 빵 하나를 들고 와 직원에게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무슨 일 때문인지 정확히는 듣지 못했으나, 아마 예전에 팔던 빵과 지금 파는 빵이 다르다는 이유였던 것 같다. 아직 계산하기 전이니 맛이 다르다는 항의는 아니고, 파는 단위가 달라진 것 같았다. 남자는 "쥐 트웨니 당시에는 이렇게 팔았는데 왜 지금은 그렇게 팔지 않느냐"는 식으로 따졌다. 그의 목소리는 크고 신경질이 베어 있었다. 직원은 그때 빵집은 폐업하고 그 사이 새 빵집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그건 사실이다.) 그러자 남자는 화를 내며 빵을 팽개치고 나가버렸다. 직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투로 내 빵을 계산해줬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용산역사 내의 서점에서 문구류를 사려고 서성였는데, 한 중년 남자(또!)가 직원을 붙잡고 신경질을 내고 있었다. 코팅을 하러 왔는데 직원이 자리에 없으며 자신이 원하는 규격도 없다고 했다. 직원은 코팅 담당 직원이 점심 식사를 하러 갔고, 손님이 원하는 규격은 최근에 납품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자는 다짜고짜 신경질을 냈다. 결국 직원은 손님이 원하는 방향으로 규격을 어떻게든 맞춰주기로 하고 조치를 취하는 것 같았다. 그 손님의 마음 속엔 서점 직원은 점심도 먹지 말아야 하며, 자기가 원하는 물건은 언제라도 갖춰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걸까.  (회사에도 가끔 이런 사람들이 전화를 건다. 점심 시간에 전화 해서는 담당자가 자리에 없다고 하면 화를 낸다.)

'손님은 왕'이란 격언은 폭력적이다. 지금 한국의 정치체제는 공화정이다. 대통령도 왕이 아닌 마당에 손님이 왕일 수는 없다. 물론 왕이라는 건 비유적인 표현이다. 손님을 왕처럼 최선을 다해 대하고, 그의 말은 어떤 불합리한 것이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 격언에는 (돈을 벌게 해주는) 손님은 왕이라는 괄호 속 말이 숨어있을 것이다. 돈을 최고로 치는 자본주의 사회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손님이 사람이면 직원도 사람인데,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이 어찌 군신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건달같은 태도의 손님이 돈을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왕처럼 대할 이유는 없다. 사람과 사람의 일이다. 

반대 경우도 마찬가지다. 손님이 직원의 불친절을 견뎌야 할 이유는 없다. 아무리 싼 가게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난 불친절한 직원들에게 별 항의를 하지 않는 편이지만, 기분이 좋지 않은 건 어쩔 수 없다. 내가 손님이라서 친절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전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그랬듯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식의 과도한 친절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최소한의 예절을 지켜달라고 요구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다시 공중도덕의 문제로 돌아가서. 청소는 환경미화원의 일이다. 그들의 일거리를 주지 않을만큼 모든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조금 더 편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배려하는 마음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연관된 모든 일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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