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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이민정이라 쓰고 대세라고 읽는다. <원더풀 라디오>

이민정은 하고 싶은 의도를 명확히 말하고,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방법을 아는 인터뷰이였다.

/사진 이석우 기자


이민정(29)은 요즘 “지나가는 시내버스를 보며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했다. 버스 옆구리에 자신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찍힌 포스터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2012년 만날 첫 한국영화인 <원더풀 라디오>(1월5일 개봉)는 이민정의 첫 타이틀롤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이민정은 왕년의 아이돌 그룹 출신 라디오 DJ 신진아로 등장한다. 이제는 알아보는 이 많지 않은 연예인이지만, 자존심만은 전성기 못지않다. 청취율이 저조해 폐지 위기에 몰린 프로그램 ‘원더풀 라디오’에 새 PD 이재혁(이정진)이 투입된다.

신진아와 이재혁은 티격태격하면서도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낸다. 그 와중에 청취자의 애절한 사연과 노래를 담은 코너가 인기를 끌면서 ‘원더풀 라디오’는 전기를 맞는다.

역할을 위해 기타를 배운 이민정. F코드만 빼면 대략 잡는다고.

영화는 최근 2~3년 사이 정상급 스타로 부상한 이민정의 매력을 살리는 데 집중한다. 이민정은 연기하고 노래하고 연주하고 춤춘다. 이승환이 만들고 이민정이 부른 ‘참 쓰다’는 음원 차트에도 올랐다.

1990년대 아이돌 그룹 ‘퍼플’ 시절을 재연하는 장면에선 이제는 아무도 입지 않을 ‘요정’풍의 의상을 소화했다. 그 와중에 머리 절반가량을 뒤덮는 리본까지 달았다. 이민정은 “그 옷 입고 되게 많이 웃었다”고 전했다.

<원더풀 라디오> 현장에서 이민정은 순발력 있고 기본기 좋은 배우였다. 극중 신진아의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세부적인 부분까지 직접 아이디어를 냈다. 컴퓨터를 많이 다뤄본 적이 없어 독수리 타법으로 작업하는 장면, 방송 중간에 과자 등의 주전부리를 먹는 장면, 매니저(이광수)와 티격태격하는 장면 등은 애초 각본에 없었다.

찐 옥수수를 먹는 장면에서 권칠인 감독은 “들고만 있으라”고 얘기했는데, 소품팀이 ‘지나치게’ 맛있는 옥수수를 구해오는 바람에 2개나 먹어버렸다.

<원더풀 라디오>의 신 스틸러 이광수(오른쪽)

대학 연기예술학부에 진학했지만 이민정은 애초 연출, 제작에 뜻을 품고 있었다. 학기 말 과제로 동료들과 함께 연극을 준비하다 연기의 매력에 빠졌다. 3학년 때 이윤택이 연출한 <서툰 사람들>에 출연한 뒤 ‘이 연극 보고 세상은 살 만한 곳이라고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관객의 평을 읽었다. 이민정은 “눈물이 났다. 사람들을 따뜻하게 만드는 직업이라면 내가 해도 좋겠다”고 생각한 뒤 배우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그러나 10대 초·중반부터 연예인을 꿈꾸는 소녀들이 즐비한 세상이었다. 출발이 늦었다.

오디션에 떨어진 횟수는 셀 수가 없다. 겨우 캐스팅까지 됐으나 대본 연습 전날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은 적도 있다. 지금도 이민정은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주변 사람들에게 캐스팅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후 독립영화 <포도나무를 베어라>로 데뷔했고, <시라노; 연애조작단>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민정은 “20대 초반에 할 수 있는 역할을 못해봐서 아쉽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시간을 ‘자유인’으로 보냈다는 것은 장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포털 사이트에 이름을 치면 ‘여신’이란 수식어와 함께 검색되는 스타지만, 이민정은 그 이전에 욕심 많은 배우였다. <원더풀 라디오>의 애초 시나리오에는 신진아의 추락이 좀 더 극적이고 과격했는데, 각색과 편집 과정에서 순화된 점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상영시간의 제한 때문에 이재혁과의 감정신이 잘려나간 점도 안타깝다.

30대를 눈앞에 둔 이민정은 지금 ‘대세’다. 그러나 이민정을 대세로 만든 것은 우연이 아닌, 배우 개인의 야심과 준비였다.

/사진 이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