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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이슈

왜 헬기는 안개 속으로 날아갔는가

안개가 자욱하게 낀 토요일 아침, 잠실헬기장에서 대기업 임원을 태우고 지방 공장으로 가기로 했던 헬기가 헬기장에 도착하기 전 서울 삼성동의 고층 아파트에 부딪힌 뒤 추락했다. 주민들은 무사했으나, 헬기 조종사 2명은 그 자리에서 숨졌다. 사고의 원인이 담긴 블랙박스는 현장에서 곧바로 수거됐다. 분석 작업에는 6개월이 걸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6개월을 기다리는가. 단언컨대, 6개월 뒤 이 사건의 원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커녕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그래서 언론은 이런저런 취재를 근거로 사고 원인을 '추정'한다. 물론 이 추정은 근거가 충분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김포공항에서는 이륙 허가를 내줬다. 안개가 짙었으나 규정상 이륙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안개는 불균질하다. 짙었다가 옅여지고 다시 짙어진다. 게다가 목적지였던 잠실헬기장은 유달리 기상 변화가 심한 곳이다. 김포에선 3마일이던 시정이 잠실에 도착해선 1마일도 안되는 경우도 있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헬기가 갑자기 남쪽으로 방향을 선회해 고층 아파트를 들이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대통령 전용기를 몬 경험이 있는 베테랑 조종사들은 왜 그 자욱한 안개 속에 비행을 감행했을까. 고층 건물이 즐비한 강남에서 그토록 낮게 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수의 조종사들의 언급을 종합하면, 기체 이상보다는 기후 이상에 의한 사고로 의견이 모인다. 일각에서는 아이파크 옥상에서 누군가를 태우려다가 사고가 났다는 의혹도 제기됐으나, 신빙성이 떨어진다. 일단 아이파크 옥상엔 원칙적으로 사고 헬기 크기의 기체가 상륙할 수 없다. 평소 이 아파트 옥상에 헬기가 착륙하는 모습을 본 사람도 없다. 아이파크 같은 아파트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아무리 고층, 고급 아파트라도 그 옥상에서 헬기가 내리고 뜨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당장 또다른 상류층 주민들이 자기 머리 위에서 헬리가 오르내리는 모습을 참고 있겠는가. 


아이파크 아파트 헬기 충돌 사고 현장/ 김기남 기자



토요일 오후 도착한 아이파크 사고 현장은 철저히 통제됐다고 한다. 다음날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통제됐다고 들어갈 수 없는 건 아니다. 때론 취재를 위해 법을 어기는 걸 감수해야할 때도 있지만, 이번 건은 그 정도로 거창하고 비장하게 말할 것도 아니다. 단지 약간의 요령이 필요할 뿐이다. 그것이 기자로서의 스킬이다. 


피해 주민들은 곧바로 인근의 특급 호텔로 안내됐다. 아이파크 아파트가 아니었어도 그랬을까. 만약 5층짜리 주공아파트 주민의 피난처로도 특급 호텔이 제공됐을까. 생각해볼 일이다. 


안개가 짙어 목적지까지 가기가 어려우면 헬기는 잠시라도 쉬어갈 곳을 찾는다. 문제는 잠실헬기장 인근엔 착륙할 곳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그래도 사고기 조종사들은 베테랑 아닌가. 베테랑이란 어떤 악조건에도 당황하지 않고 능숙한 사람 아니던가. 어느 조종사는 이렇게 말했다. "베테랑? 아무리 베테랑이라도 백만 가지 중 하나만 잘못되면 사고로 연결되는게 비행이다." 또다른 조종사는 말했다. "천재지변 앞에는 베테랑이 없다." 자연이 내려준 어떤 상황에서는 100시간이든 1000시간이든 10000시간이든 인간의 경험은 무의미하다. 


한국 대기업의 문화를 거론하는 이도 있었다. 사고 헬기가 소속된 기업 관계자는 사고기 기장이 임원급 대우를 받았으며, 모든 비행에는 기장의 판단이 최우선으로 반영된다고 말했다. 아무리 높은 사람이라 해도 목숨을 걸고 비행을 지시할 리는 없지 않겠냐는 얘기다. 일리가 있다. 그러나 어느 조종사는 다른 톤으로 말했다. "민간은 돈이다. 가자고 하면 가야한다. 못간다고 하면 자존심 건드린다."


사고가 일어났고 2명이 죽었다. 그 원인은 모른다. 우리는 우유 같은 안개 속을 더듬어 몇 가지 파편을 모은다. 더듬더듬. 이것이 지금까지의 그림이다. 부지런하고 운좋은 다른 누군가가 큼직한 파편을 모으면 또다른 그림을 그리겠지. 


사회부에 온 뒤로 처음 경험한 '사건'이다. 또 얼마나 많은 사건이 일어나고, 죽음을 만날까. 우리는 그 죽음의 의미를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죽음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모든 죽음에 손을 모으고 조용히, 멀찌감치 다가서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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