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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이슈

예뻐야 해 뭐든지 예쁜게 좋아


좀 기괴한 해프닝이 벌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라라랜드'와 '문라이트'가 상을 받은 올해 아카데미가 '스포트라이트'와 '레버넌트'가 상 받은 지난해보단 재밌었던 것 같다. 



워런 비티가 더듬거리며 봉투를 만질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비티는 또 다른 쪽지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듯 봉투를 한 번 더 살펴봤는데, 그때 이미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전 세계의 시청자들은 그 순간 올해 80대가 된 비티의 총기를 염려했을 것이다.


지난주 아카데미 시상식은 89회 역사상 가장 황당한 촌극과 함께 막을 내렸다. 최고 영예인 작품상 시상을 위해 무대에 오른 비티와 페이 더너웨이에게 직전 시상된 여우주연상(<라라랜드>의 에마 스톤) 봉투가 잘못 전달된 것이다. 작품상 수상작으로 호명된 <라라랜드> 제작진이 감격에 겨운 수상소감을 말하는 사이, 무대 뒤에선 난리가 났다. 결국 수상작은 <문라이트>로 정정됐고, 두 영화 관계자들, 객석의 스타들, 시청자들은 경악했다.

당황스럽고 어색한 전개를 거치긴 했지만, 결말은 결국 해피엔딩이었다. 작품상을 놓친 <라라랜드>조차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6개를 거머쥐었다. 고수는 고수끼리 통한다. 발표 번복 이후 <라라랜드> 제작진의 반응은 ‘패자의 품격’을 보여줬다. 수상소감을 마친 뒤 시상식 스태프로부터 발표가 잘못됐다는 말을 들은 <라라랜드>의 프로듀서 조던 호로위츠는 동료들을 진정시켰고 곧 <문라이트>가 수상작이라고 직접 정정했다. 호로위츠는 어리둥절한 <문라이트> 제작진에게 트로피를 건네주고 서둘러 무대를 내려갔다.



<라라랜드>와 <문라이트>(위로부터)



엇갈린 운명만큼 두 영화의 모양새는 다르다. <문라이트>는 근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중 가장 비주류적인 색채의 작품이었다. 세 명의 배우가 소년, 청소년, 성인 시절을 각각 연기한 주인공은 빈민이자 흑인이며 성소수자다. 마약중독자인 홀어머니로부터 보살핌을 받지 못한 소년은 자상한 마약상을 멘토로 삼아 학교와 거리에서 살아남으려 발버둥친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단돈’ 17억원. 역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중 최저 제작비이자, 아카데미 시상식에 삽입된 30초 광고 비용에도 못미치는 금액이다. <문라이트>는 흑인 감독·작가 최초의 작품상, 성소수자를 소재로 한 최초의 작품상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시상식 사회자 지미 키멜의 농담처럼, <라라랜드>는 “백인이 재즈를 구한다”는 내용이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는 화려한 할리우드를 배경으로, 꿈을 찾는 배우 지망생과 재즈 연주자의 사랑이야기다. 스타 배우 라이언 고슬링, 에마 스톤이 춤과 노래로 절정의 매력을 뽐낸다. 두 남녀가 보이지 않는 미래의 전망, 희미해지는 사랑의 감정에 지쳐가는 과정이 나오기도 하지만, <라라랜드>의 주된 정조는 결국 낭만과 긍정이다. 흑인 감독, 배우가 만든 <문라이트>가 현실의 질곡에 발 딛고 있다면, 백인 감독, 배우가 만든 <라라랜드>는 찬란한 꿈을 노래했다.

하지만 두 영화는 어떤 면에서 비슷하다. 공교롭게도 두 영화의 감독은 같은 세대와 경력의 영화인 무리에 속해 있다. <문라이트>의 배리 젠킨스는 올해 38세로, 이번 작품을 포함해 2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라라랜드>의 데이미언 셔젤은 32세이며, 3편의 장편 연출 경력이 있다. 지난해 최고의 미국영화를 만든 둘은 미국 내 시상식과 해외 영화제에서 수차례 마주쳤고, 서로의 작품을 관람했다. ‘버라이어티’ 인터뷰에서 젠킨스는 “<라라랜드>를 본 순간, 한 번도 느끼지 못한 로스앤젤레스에 대한 향수를 느꼈다”고 했고, 셔젤 역시 젠킨스의 데뷔작까지 챙겨본 팬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두 영화는 아름답다. <문라이트>는 마약과 가난에 찌든 흑인 빈민층의 현실을 고발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다. 소년이 달빛에 물든 해변에서 하나뿐인 친구와 이야기할 때, 십수년이 흘러 근육질의 마약상이 된 소년이 친구의 조촐한 식당을 찾아와 그간의 회한을 털어놓을 때, 그 고요와 서정은 보는 이의 숨을 앗아간다. <라라랜드> 첫 장면, 꽉 막힌 고속도로 위 운전자들이 갑자기 자동차 사이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대목은 인간의 움직임과 이를 다듬는 연출력이 얼마나 큰 경탄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준다.

3월이 되었지만 아침 나절의 바람은 여전히 거세다. 날은 춥고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 생떼를 쓰고 독기를 품은 사람들이 곳곳에 도사렸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아름다움이 무슨 소용이냐 묻는다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름다워야 한다고 답하겠다. 예술은 때로 정치적이지만 정치 그 자체일 수는 없으며, 때로 폭탄처럼 강력한 충격을 안기지만, 폭탄 그 자체일 수는 없다. 정치가 궁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매진하는 사이, 예술은 과정의 완결성에 눈돌린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처절한 복수를 꿈꾸는 금자는 과한 장식으로 꾸며진 총을 쓰다듬으며 말한다. “예뻐야 해. 뭐든지. 예쁜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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