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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낳은 정, 기른 정. <휴고>

-미국 영화를 대표하는 감독 두 명이 3개월 사이에 나란히 첫 3D 영화를 내놓았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틴틴>을, 마틴 스콜세지는 동화를 원작으로 하는 <휴고>를 선보였다. 공교롭게도 모두 가족영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3D는 애들용'이라는 인식 때문?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본격적인 영화(스필버그 같으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AI>, 스콜세지 같으면 <디파티드>나 <갱스 오브 뉴욕>)를 찍기 전의 워밍업? 아무튼 <틴틴>을 봤을 때는 조금 모자라긴 하지만 그래도 명불허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 <휴고>를 보고 나니 스필버그 대 스콜세지의 3D영화 대결 1라운드는 스콜세지의 완승. 

-그런데 <휴고>를 온전히 '가족영화'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것이, <틴틴>과 달리 <휴고>는 스콜세지의 매우 개인적인 프로젝트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스필버그는 <인디아나 존스>와 <틴틴>의 유사성을 의식하고 있었으며, 그래서 80년대부터 <틴틴>의 판권을 사두었다고 밝힌 바 있다. <휴고>의 제작과정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지만, <휴고>는 스콜세지가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하기도 이전에 꿈꾸었을 법한 프로젝트가 아니었나 싶다. 그건 <휴고>가 '꿈으로서의 영화', 혹은 '안티 리얼리즘 영화'(이런 말은 없거나 잘 쓰이지 않는다. 내가 지금 조악하게 생각했다), 혹은 그냥 '영화'의 아버지인 조르주 멜리에스에 대한 헌정이기 때문이다. 물론 <휴고> 속에는 영화의 '생부'인 뤼미에르 형제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그들의 대표작인 <기차의 도착>도 여러차례 인용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도 언급되다시피 뤼미에르 형제는 영화가 한때의 유행이라 생각했다. 대중이 식상해하면 영화도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화에서 예술 혹은 빼어난 오락의 가능성을 파악한 이는 멜리에스였다.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낳은 뒤 잠깐 돌보다 내다버린 매정한 생부라면, 멜리에스는 그를 주워다가 사랑을 주고 교육까지 시킨 양부다. 

은둔해 장난감 가게를 운영하며 살아가는 영화의 양부, 조르주 멜리에스(벤 킹슬리).

-얼른 찾아보니 스콜세지의 나이도 만 68세. <휴고>에 카메오로 등장하는 걸 보니 멀쩡해 보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제 서서히 자신의 남은 생애(혹은 활동기) 동안 몇 편의 영화를 만들어야 할지 생각해볼만한 나이다. 60년대 후반부터 만들었으니 스콜세지도 40년 넘게 영화를 찍어온 셈인데, 그래도 아직 여러가지 이유로 꺼내들지 못한 필생의 프로젝트가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시도해야 할 시기다. 이런 시기의 노감독이 자신 뿐 아니라 모든 영화의 아버지, 영화의 기원을 돌아보면서 그를 기리는 영화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의미심장하다고 지레짐작할 필요는 없겠지. 

-지금 도시에 사는 많은 이들이 그럴테지만, 내 고향은 고향이 아니고 감수성이 깊게 뿌리 내렸다고 할만한 무언가도 딱히 없다.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조금 좋아한 나는, 그래서 (스크린 위의) 영화에 대한 향수나 애착 같은 것이 있다.  그래서 영화의 뿌리를 찾는 과정을 그리는 영화에 조금 더 애착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관객이 보지는 않은 김소영 감독의 <경>을 괜찮게 느꼈던 이유도 비슷한 것 같다. 그 영화는 한국 영화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과정, 그 어머니가 죽었음을 선언하는 과정, 어머니의 아이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라고 나는 '오독'했다. 전세계적으로 소문난 영화광인 스콜세지가 <휴고>의 원작을 접한 뒤 어떤 기쁨을 느꼈는지는 아주 조금만 짐작할 수 있다.  

애들을 가르치는 마틴 할아버지. 인자해 보이는 얼굴은 아니다. 

-영화 도입부, 파리 전경에서 시작해 기차역을 거쳐 시계탑 안으로까지 한 번에 주욱 밀어나가는 롱테이크는 '이제 영화로 못찍을게 뭐있냐'는 스콜세지의 자랑 같았다. 이런 과시적인 테크닉 때문에 스콜세지를 별로 안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휴고>에선 매우 잘 사용된 테크닉 같았다. 난 <아바타>의 나비족이나 형광색 나무들은 전혀 신기하지 않았는데, <휴고>의 오프닝에선 무조건반사처럼 입이 벌어졌다. 천하의 마술사에 기발한 상상력을 가졌던 멜리에스가 타임머신을 타고와 이 영화의 도입부를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동인형은 마치 동북아시아의 불상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어떨 때는 슬프고 어떨 때는 미소짓고 어떨 때는 우울하다. 이 자동인형이 실제로 여러 개의 버전으로 제작돼 장면마다 다른 '연기'를 하고 있는걸까, 아니면 같은 표정인데 장면의 내용에 따라 달리 보이는걸까. 옛 영화사 교과서에서 본 초기 러시아 영화의 실험이 생각난다. 한 유명한 배우의 무표정한 얼굴을 찍은 영상 뒤에 빵을 찍은 장면, 노는 아이들을 찍은 장면 등 여러 가지 장면을 붙여봤다. 관객(피실험자)은 빵 장면에선 배우의 경건한 연기를, 아이 장면에선 배우의 흐뭇해하는 연기를 느꼈다면서 정말 훌륭한 연기였다고 칭찬했다고 한다.  

 바로 이 인형. 처음 움직일 때 무척 신기했다. 저런거 집에 있으면....아기가 고장내겠지. 

-아울러 소년 휴고의 스웨터는 정말 예뻤다. 가난한 소년이라 그 스웨터만 입고 나오는데, 나같아도 그런 스웨터라면 매일 입고 다니겠다. 

 바로 저 옷! (사주세요, 사주세요)

-클로이 모레츠는 <킥 애스> 이후 꽤 팬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난 이 영화에서의 연기는 별로 마음에 안들었다. 마치 <해리 포터> 시리즈 초반부의 엠마 왓슨처럼 책을 많이 읽어 똑똑하고 되바라진 소녀 연기를 하는데, 그런 역할을 너무 티나게 소화하고 있었다. 똑똑해서 얄미운 애처럼.   

잔혹한 역무원 역의 사샤 바론 코엔. 얼마전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 카펫에서 김정일 유골 뿌리는 퍼포먼스를 한 그 남자. 

-원작인 <위고 카브레>를 구해놨으니, 곧 읽어야지.  

 원작은 이런 분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