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경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박찬욱의 동생이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유명한 형 때문에 조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박찬욱을 소개해달라, 시나리오 한번만 건네달라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술과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위라세타쿤 아피차퐁은 감독인 동시 미디어아티스트고, 2009년 이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스티브 맥퀸도 두 직업을 겸한다. 박찬경은 언젠가 상업적인 공포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파란만장>은 재미있다. 잊혀졌던 이정현이 오랜만에 제 역을 맡았다.
<파란만장> 중. 초반에 어어부밴드가 등장해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박찬경은 유망한 미디어아티스트, 사진작가, 평론가였다. 2007년부터는 영화로 손을 뻗쳐 3편의 중·단편과 1편의 장편을 만들었다. 그는 왜 익숙한 비엔날레의 세계에서 낯선 영화제의 세계로 넘어왔을까.
“한국 사회에서 미술이라는 제도가 갖는 한계가 있어요. 관객이 절대적으로 적고, 비평과 저널리즘도 취약해요. 미술은 가족과 친구만 본다는 말도 농담삼아 하죠. 미술은 물리적 공간을 필요로 하지만 영화는 디비디나 인터넷, 케이블 등 대중에게 접할 기회가 훨씬 많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영화와 미술의 경계는 차츰 흐려지고 있다. 박찬경의 말대로 미술계는 대중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영화계는 예술적 가치에 우선 관심을 두는 미술계의 분위기가 그립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위라세타쿤 아피차퐁의 작품은 갤러리에서 인스톨레이션 형식으로도 자주 전시된다. 박찬경은 그 한국적 흐름의 최전방에 있다.
박찬경은 최근 장편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와 단편 <파란만장>을 새로 선보였다. 장편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의 지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88 올림픽을 앞두고 여성 노동자 22명이 감금된 채 화재로 사망한 그린힐 봉제공장 사건을 중심으로 안양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본다. 박찬경은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오간다. 오늘 안양에선 타죽은 여공들을 기억하는 이는커녕, 그 무덤조차 찾을 길 없다. 안양이란 지명은 불교 용어로 ‘극락’이라는데, 그 여공들에게 이곳은 극락이었을까. 여공들은 다시 안양에 태어나고 싶을까.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중. 한국적인 낙원의 모습이다.
“대학에 입학하니 선배들이 일부러 절 공단에 데려갔어요. 강남에 살던 제게는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공업도시였던 안양은 어느덧 현대적 서비스 도시가 됐습니다. 옛 기억이 어떻게 그토록 빨리 잊혀질 수 있는지…. 안양 뿐 아니라 한국의 어느 도시도 마찬가지겠죠.”
그는 억압된 역사, 잃어버린 기억에 관심이 많다. 분단, 북한, 파독광부, 땅굴 등이 그의 사진과 인스톨레이션 작업 소재였다. 그는 “386세대가 다 그렇지 않느냐. 못 벗어난다. 한심하다”며 웃었다.
“왜 아직 분단을 물고 늘어지냐는 소리를 들어요. 전 분단에 관심이 없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을 겪으셨고, 저희는 ‘자수하여 광명찾자’는 반공교육 받으며 자랐고, 어느 순간 반공 이데올로기가 해체되고, 또 반복되고…. 분단이 시사적인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파악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분단에 대해 다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중편 <신도안>,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파란만장>을 가로지르는 소재는 무속이다. 그는 “기독교가 막대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반면, 무속은 억압되고 천시됐다. 대표적인 예가 <무릎팍 도사>다. 무속을 코믹하게만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자신들의 정신문화의 한 뿌리인 무속을 억압하고 천대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의 굿 장면(위)과 <파란만장>의 무당의 꽃.
그는 지난해 처음으로 상업화랑에서 전시를 열었다. 그의 이전 작업을 고려하면 강남 한복판의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인 것이 어색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작가보고 굶어죽으라는 소리죠. 대학교수가 되면 안해도 되겠지만 전업작가로 살기 위해선 작품을 팔아야 합니다. 문제는 작품을 팔기 위해 영혼도 팔 것이냐 하는 것일텐데, 제가 작품을 팔기 위해 내용, 메시지를 훼손하는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같은 작가끼리는 어느 정도 타협했는지 잘 보이는데, 그 타협이 더 야심있는 프로젝트를 하기 위한 것이라면 비난하기 참 힘들다”고 말했다. 백남준이 한 예다. 박찬경은 “백남준은 태작을 쏟아냈다. 그 중 좋은 작품이 몇 개 있다. 그는 스스로 장사꾼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파란만장>에서 박찬경은 공동연출자로 이름을 올렸다. 또다른 연출자는 그의 형 박찬욱 감독이다. <파란만장>은 아이폰4 카메라를 이용해 찍었다. 박찬욱·찬경 형제는 이름의 첫 두 글자를 따 파킹 챈스(PARKing CHANce)라는 연출 브랜드를 만들었다. ‘주차 기회’를 찾는 것처럼 틈새 프로젝트를 노린다는 의미다. 각자 미술, 영화의 선두주자로 활동하던 형제는 언젠가 함께 일할 기회를 만들자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 첫 결과물이 <파란만장>이다. <파란만장>은 한적한 낚시터에 간 낚시꾼 오광록이 물고기 대신 소복 입은 여인 이정현을 끌어 올리면서 겪는 환상과 공포를 그렸다. 박찬경은 형의 영화 중에선 <올드보이>와 <박쥐>를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파란만장>의 장면들. 낚시꾼 오광록, 낚시하다가 소복 입은 여인을 낚은 모습, 오광록과 옷을 바꿔입은 소복녀 이정현(위로부터)
박찬경은 기회가 온다면 지금보다 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흥행에 자신있느냐고 했더니 “못할 것 없다”고 답했다. 해보고 싶은 장르는 공포물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얘기를 끌어와 “가장 친숙한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고보면 익숙한데 억압돼서 잊혀진 것,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을 그려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 혹은 공산주의를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의 예로 들었다. ‘공산주의 공포영화’는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미술과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지난해 칸 황금종려상을 받은 위라세타쿤 아피차퐁은 감독인 동시 미디어아티스트고, 2009년 이 영화제 황금카메라상을 받은 스티브 맥퀸도 두 직업을 겸한다. 박찬경은 언젠가 상업적인 공포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파란만장>은 재미있다. 잊혀졌던 이정현이 오랜만에 제 역을 맡았다.
<파란만장> 중. 초반에 어어부밴드가 등장해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박찬경은 유망한 미디어아티스트, 사진작가, 평론가였다. 2007년부터는 영화로 손을 뻗쳐 3편의 중·단편과 1편의 장편을 만들었다. 그는 왜 익숙한 비엔날레의 세계에서 낯선 영화제의 세계로 넘어왔을까.
“한국 사회에서 미술이라는 제도가 갖는 한계가 있어요. 관객이 절대적으로 적고, 비평과 저널리즘도 취약해요. 미술은 가족과 친구만 본다는 말도 농담삼아 하죠. 미술은 물리적 공간을 필요로 하지만 영화는 디비디나 인터넷, 케이블 등 대중에게 접할 기회가 훨씬 많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영화와 미술의 경계는 차츰 흐려지고 있다. 박찬경의 말대로 미술계는 대중의 관심을 필요로 하고, 영화계는 예술적 가치에 우선 관심을 두는 미술계의 분위기가 그립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위라세타쿤 아피차퐁의 작품은 갤러리에서 인스톨레이션 형식으로도 자주 전시된다. 박찬경은 그 한국적 흐름의 최전방에 있다.
박찬경은 최근 장편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와 단편 <파란만장>을 새로 선보였다. 장편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안양공공미술프로젝트(APAP)의 지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88 올림픽을 앞두고 여성 노동자 22명이 감금된 채 화재로 사망한 그린힐 봉제공장 사건을 중심으로 안양의 어제와 오늘을 돌아본다. 박찬경은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는 픽션과 다큐멘터리의 경계를 오간다. 오늘 안양에선 타죽은 여공들을 기억하는 이는커녕, 그 무덤조차 찾을 길 없다. 안양이란 지명은 불교 용어로 ‘극락’이라는데, 그 여공들에게 이곳은 극락이었을까. 여공들은 다시 안양에 태어나고 싶을까.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중. 한국적인 낙원의 모습이다.
“대학에 입학하니 선배들이 일부러 절 공단에 데려갔어요. 강남에 살던 제게는 굉장한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공업도시였던 안양은 어느덧 현대적 서비스 도시가 됐습니다. 옛 기억이 어떻게 그토록 빨리 잊혀질 수 있는지…. 안양 뿐 아니라 한국의 어느 도시도 마찬가지겠죠.”
그는 억압된 역사, 잃어버린 기억에 관심이 많다. 분단, 북한, 파독광부, 땅굴 등이 그의 사진과 인스톨레이션 작업 소재였다. 그는 “386세대가 다 그렇지 않느냐. 못 벗어난다. 한심하다”며 웃었다.
“왜 아직 분단을 물고 늘어지냐는 소리를 들어요. 전 분단에 관심이 없는게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을 겪으셨고, 저희는 ‘자수하여 광명찾자’는 반공교육 받으며 자랐고, 어느 순간 반공 이데올로기가 해체되고, 또 반복되고…. 분단이 시사적인 문제로서만이 아니라 우리 생활,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까지 파악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분단에 대해 다 아는 것 같지만, 실은 아무 것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중편 <신도안>,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 <파란만장>을 가로지르는 소재는 무속이다. 그는 “기독교가 막대한 권력을 누리고 있는 반면, 무속은 억압되고 천시됐다. 대표적인 예가 <무릎팍 도사>다. 무속을 코믹하게만 바라본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이 자신들의 정신문화의 한 뿌리인 무속을 억압하고 천대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시 태어나고 싶어요, 안양에>의 굿 장면(위)과 <파란만장>의 무당의 꽃.
그는 지난해 처음으로 상업화랑에서 전시를 열었다. 그의 이전 작업을 고려하면 강남 한복판의 갤러리에서 작품을 선보인 것이 어색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었다.
“그렇다면 작가보고 굶어죽으라는 소리죠. 대학교수가 되면 안해도 되겠지만 전업작가로 살기 위해선 작품을 팔아야 합니다. 문제는 작품을 팔기 위해 영혼도 팔 것이냐 하는 것일텐데, 제가 작품을 팔기 위해 내용, 메시지를 훼손하는 단계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는 “같은 작가끼리는 어느 정도 타협했는지 잘 보이는데, 그 타협이 더 야심있는 프로젝트를 하기 위한 것이라면 비난하기 참 힘들다”고 말했다. 백남준이 한 예다. 박찬경은 “백남준은 태작을 쏟아냈다. 그 중 좋은 작품이 몇 개 있다. 그는 스스로 장사꾼이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파란만장>에서 박찬경은 공동연출자로 이름을 올렸다. 또다른 연출자는 그의 형 박찬욱 감독이다. <파란만장>은 아이폰4 카메라를 이용해 찍었다. 박찬욱·찬경 형제는 이름의 첫 두 글자를 따 파킹 챈스(PARKing CHANce)라는 연출 브랜드를 만들었다. ‘주차 기회’를 찾는 것처럼 틈새 프로젝트를 노린다는 의미다. 각자 미술, 영화의 선두주자로 활동하던 형제는 언젠가 함께 일할 기회를 만들자고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 첫 결과물이 <파란만장>이다. <파란만장>은 한적한 낚시터에 간 낚시꾼 오광록이 물고기 대신 소복 입은 여인 이정현을 끌어 올리면서 겪는 환상과 공포를 그렸다. 박찬경은 형의 영화 중에선 <올드보이>와 <박쥐>를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파란만장>의 장면들. 낚시꾼 오광록, 낚시하다가 소복 입은 여인을 낚은 모습, 오광록과 옷을 바꿔입은 소복녀 이정현(위로부터)
박찬경은 기회가 온다면 지금보다 더 대중적인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흥행에 자신있느냐고 했더니 “못할 것 없다”고 답했다. 해보고 싶은 장르는 공포물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얘기를 끌어와 “가장 친숙한 것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고보면 익숙한데 억압돼서 잊혀진 것,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을 그려내고 싶다는 것이다. 그는 죽음 혹은 공산주의를 우리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의 예로 들었다. ‘공산주의 공포영화’는 어떤 것일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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