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 통계를 보니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이번주 예매율은 5위다. 1위는 <만추>, 2위는 <아이들...>이다. 하긴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이순재 볼래 현빈 볼래, 혹은 김수미 볼래 탕웨이 볼래 하면 답은 뻔하긴 하겠다. 주말이 지나면 결과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개봉 첫 주에 시선을 끌지 못하면 금세 밀려나는 것이 요즘 극장가의 생리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기미가 없다.
명색이 상업영화라지만 솔직히 이 영화엔 관객을 끌 요소가 많지 않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것도 형편이 넉넉지 않은 노인 4명의 사랑이야기, 영화화돼서 성공한 적이 없는 강풀의 만화 원작, 제목은 심심하기 짝이 없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심지어 강풀조차 만화를 처음 그릴 때 “이런 만화를 독자들이 좋아할까”라는 의구심을 안고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일단 영화를 보면 대체로 운다. 기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관람한 시간이 영화에 대한 ‘리액션’이 강한 일반 시사회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중반 이후엔 사방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마다 우유 배달을 하는 성마른 영감 만석(이순재)은 폐지를 줍는 송씨 할머니(윤소정)를 만난다. 아내와 사별한 만석은 어엿한 자식에 손녀까지 있지만, 송씨는 독거노인이다. 퉁명스러웠던 만석은 송씨와 만나며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남자가 된다.
주차장 관리인 군봉(송재호)에겐 아내 순이(김수미)가 있다. 치매에 걸린 순이는 벽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떠먹여줘야 밥을 먹고, 바지를 입은 채로 똥을 싼다. 그러나 자식 삼남매를 분가시킨 군봉에게 순이는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다.
나이가 들었다고 별다른 사랑을 하는 건 아니다. 사랑은 걱정에서 시작된다. 매일 보던 시간에 송씨가 나타나지 않자 만석은 온갖 걱정을 다한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제 맘대로 열성을 다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만석은 송씨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가 그가 ‘까막눈’인 걸 알자 그림 편지를 쓴다. 아이들의 그림 일기처럼 단순하지만 보는 순간 뜻을 알 수 있는 편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김춘수는 읊었는데, 만석은 주민등록증조차 없이 송씨라고만 불리던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이뿐’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이순재가 슬랩스틱까지 해가며 대부분의 코믹한 상황을 책임지는데, 70대 중반의 그가 10대들까지 웃길 수 있음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입증이 됐다.
영화가 중반쯤 흘렀을 때 두 커플의 행복은 절정에 달한다. 그래서 조마조마하고 두렵다. 나머지 상영시간 동안 이들 두 커플이 결국 이별하리라는 건 필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 결말을 담건 안 담건, 이들 주위에는 사신(死神)이 어슬렁거린다는 게 감지된다.
나머지 3명의 노인들은 자신의 나이듦을 겉으로는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쳐 다시 아기가 된 순이는 솔직하게 말한다. “늙지마 여보, 늙으면 못써.” 사실 모두들 같은 심정일 것이다.
많은 상업영화는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환상을 창조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떠받치는 환상은 ‘변치 않는 사랑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믿고 싶어진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여기선 사랑하는 주체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사랑할 힘은커녕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를 근력도 부족해 보이는 이들, “팔아버릴라카이 돈 안되고 내버릴라카이 아까운” 고물차같던 이들이 뜨겁고 왕성한 사랑을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다. 다음 기회에 실패하면 또 다음 기회가 있다. 그러나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등장인물들에겐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들은 강제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군봉의 말대로 이들은 ‘겁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죽음 앞에 겁쟁이가 아닐까.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인지상정이다. 주인공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실존적 결단이기 때문이다.
4명의 ‘할매’가 나오는 <마파도>, 오랜 세월에 걸친 사랑이야기 <사랑을 놓치다>의 추창민 감독이 연출했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를 합치면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분위기가 짐작된다. 돌이켜보니 <마파도>가 재미있었던 것은 할매들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각자의 성실한 삶을 살아왔고 감독은 그 삶을 긍정했기 때문인 것 같다. 17일 개봉.
명색이 상업영화라지만 솔직히 이 영화엔 관객을 끌 요소가 많지 않다. 죽음을 눈앞에 둔, 그것도 형편이 넉넉지 않은 노인 4명의 사랑이야기, 영화화돼서 성공한 적이 없는 강풀의 만화 원작, 제목은 심심하기 짝이 없는 <그대를 사랑합니다>. 심지어 강풀조차 만화를 처음 그릴 때 “이런 만화를 독자들이 좋아할까”라는 의구심을 안고 시작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일단 영화를 보면 대체로 운다. 기자가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관람한 시간이 영화에 대한 ‘리액션’이 강한 일반 시사회였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중반 이후엔 사방에서 코를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마다 우유 배달을 하는 성마른 영감 만석(이순재)은 폐지를 줍는 송씨 할머니(윤소정)를 만난다. 아내와 사별한 만석은 어엿한 자식에 손녀까지 있지만, 송씨는 독거노인이다. 퉁명스러웠던 만석은 송씨와 만나며 세상에서 가장 로맨틱한 남자가 된다.
주차장 관리인 군봉(송재호)에겐 아내 순이(김수미)가 있다. 치매에 걸린 순이는 벽에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떠먹여줘야 밥을 먹고, 바지를 입은 채로 똥을 싼다. 그러나 자식 삼남매를 분가시킨 군봉에게 순이는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여자다.
나이가 들었다고 별다른 사랑을 하는 건 아니다. 사랑은 걱정에서 시작된다. 매일 보던 시간에 송씨가 나타나지 않자 만석은 온갖 걱정을 다한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제 맘대로 열성을 다하는 건 사랑이 아니다. 만석은 송씨에게 편지를 써 보냈다가 그가 ‘까막눈’인 걸 알자 그림 편지를 쓴다. 아이들의 그림 일기처럼 단순하지만 보는 순간 뜻을 알 수 있는 편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김춘수는 읊었는데, 만석은 주민등록증조차 없이 송씨라고만 불리던 사랑스러운 연인에게 ‘이뿐’이란 이름을 붙여준다. 이순재가 슬랩스틱까지 해가며 대부분의 코믹한 상황을 책임지는데, 70대 중반의 그가 10대들까지 웃길 수 있음은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입증이 됐다.
영화가 중반쯤 흘렀을 때 두 커플의 행복은 절정에 달한다. 그래서 조마조마하고 두렵다. 나머지 상영시간 동안 이들 두 커플이 결국 이별하리라는 건 필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그 결말을 담건 안 담건, 이들 주위에는 사신(死神)이 어슬렁거린다는 게 감지된다.
나머지 3명의 노인들은 자신의 나이듦을 겉으로는 아쉬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오랜 세월을 거쳐 다시 아기가 된 순이는 솔직하게 말한다. “늙지마 여보, 늙으면 못써.” 사실 모두들 같은 심정일 것이다.
많은 상업영화는 현실을 직시하기보다는 환상을 창조한다.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떠받치는 환상은 ‘변치 않는 사랑이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보면 그것이 환상일지라도 믿고 싶어진다. 사랑하고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 일인지를 깨닫게 한다.
여기선 사랑하는 주체가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이라는 점이 핵심이다. 사랑할 힘은커녕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를 근력도 부족해 보이는 이들, “팔아버릴라카이 돈 안되고 내버릴라카이 아까운” 고물차같던 이들이 뜨겁고 왕성한 사랑을 한다.
젊은이들에게는 다음 기회가 있다. 다음 기회에 실패하면 또 다음 기회가 있다. 그러나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등장인물들에겐 이번이 마지막이다. 이들은 강제된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군봉의 말대로 이들은 ‘겁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가 죽음 앞에 겁쟁이가 아닐까. 마지막 순간에 찾아온 행복을 놓치고 싶지 않은 건 인지상정이다. 주인공들이 어떤 선택을 하든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실존적 결단이기 때문이다.
4명의 ‘할매’가 나오는 <마파도>, 오랜 세월에 걸친 사랑이야기 <사랑을 놓치다>의 추창민 감독이 연출했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를 합치면 <그대를 사랑합니다>의 분위기가 짐작된다. 돌이켜보니 <마파도>가 재미있었던 것은 할매들이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각자의 성실한 삶을 살아왔고 감독은 그 삶을 긍정했기 때문인 것 같다. 1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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