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오페라를 잘 모른다. 이번 기회에 들어보기로 하고 컴필레이션 음반을 리핑했다. '부드러운 속삭임이' 후반부에서 마리아 칼라스와 플룻이 경쟁하듯 지저귄다. 안동림 선생은 "절망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했다.
안동림 선생은 신간 <내 마음의 아리아> 출판 기념회를 하기 하루 전날인 5일 팔순 생일을 맞았다. 그는 출판 기념회 인사말에서 책을 내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끝으로 지난 일요일 자신이 묻힐 자리를 가봤다는 말을 덧붙였다. 친지들이 많이 잠들어있는 장소 주변의 양지바른 한 곳을 찾았다고, 남들은 기분이 이상하다지만 자신은 날씨도 화창하고 해서 참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책 날개에 적힌 그의 공식 직함은 단 하나다. 청주대 영문학과 교수 역임.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책을 내면 그 내용으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장관 지냈다 어쨌다 다 쓰는데 그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 선생의 경력은 그가 내놓은 책만으로 평가해도 가득하다. ‘르네상스인’이라는 수식어를 쉽게 붙이곤 하지만, 안 선생이야말로 그 수식어에 어울린다. 소설가, 한학자, 출판기획자, 음악비평가 중 어느 쪽으로 불러도 좋지만, 그는 한사코 전문가가 아니라 애호가라고 손사래 친다. 데이비드 소로우를 전공했지만, 장자의 <장자>와 불교경전 <벽암록>도 번역했다. 서양고전음악 팬들은 한 권씩 가지고 있을만한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를 내놓았다. 이번에 나온 <내 마음의 아리아>는 포털 사이트에 1년 3개월간 연재한 글을 다음어 묶은 책이다.
그에게 ‘노래’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유년기의 원체험에 맞닿아있다. 일제 시대 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때 해방을 맞았다. 한국말은 하지만 한글은 못써서 답답해하던 그는 음악 시간에 ‘광명’을 찾았다. 아일랜드니 스코틀랜드니 하는 이름 모를 서양 어느 나라의 노래들을 따라불렀다. 그러나 음악 선생은 ‘자본주의 사상이 짙은 유해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교단에서 사라졌고, 사흘이면 끝나리라 여겼던 피난 세월은 60년이 넘게 흘렀다. 한 조각 고향 소식, 가족 안부 듣지 못한 그에게 성악곡은 “가슴을 저미는 절실한 향수의 노래”였다. 그는 “아리아는 곧 오페라”라고 단언했다. 오페라의 줄거리라고 해봐야 “사랑하다 질투하다 죽었다”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오페라를 듣는 건 아름다운 아리아 때문이다. “사람을 쥐고 흔드는” 노래 때문이다.
그는 이 시대 가장 유명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에 대해 “처음엔 참 좋았다. 그런데 나중엔 강호동처럼 소리만 질렀다”고 평했다. 오히려 “화통 삶아먹은 것처럼 목소리가 크진 않지만 고음부터 저음까지 두루 감동적인” 주세페 디 스테파노를 높이 평가했다.
안 선생은 주로 이탈리아어로 된 아리아의 원문 가사를 직접 한글로 번역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오역을 바로잡았다. 양악이 일본을 통해 수입되면서 일본식 오역이 그대로 통용됐고, 해방 60년이 넘도록 오역이 바로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골레토>의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깃털’은 어찌된 일인지 ‘갈대’로 알려져 있었다.
책과 함께 유니버설뮤직과 EMI에서 동명의 음반도 출시됐다. 안 선생은 “오페라는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가 전성기였다”며 “그때에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노래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안동림 선생은 신간 <내 마음의 아리아> 출판 기념회를 하기 하루 전날인 5일 팔순 생일을 맞았다. 그는 출판 기념회 인사말에서 책을 내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에게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끝으로 지난 일요일 자신이 묻힐 자리를 가봤다는 말을 덧붙였다. 친지들이 많이 잠들어있는 장소 주변의 양지바른 한 곳을 찾았다고, 남들은 기분이 이상하다지만 자신은 날씨도 화창하고 해서 참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책 날개에 적힌 그의 공식 직함은 단 하나다. 청주대 영문학과 교수 역임.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책을 내면 그 내용으로 평가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장관 지냈다 어쨌다 다 쓰는데 그건 좋은 태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 선생의 경력은 그가 내놓은 책만으로 평가해도 가득하다. ‘르네상스인’이라는 수식어를 쉽게 붙이곤 하지만, 안 선생이야말로 그 수식어에 어울린다. 소설가, 한학자, 출판기획자, 음악비평가 중 어느 쪽으로 불러도 좋지만, 그는 한사코 전문가가 아니라 애호가라고 손사래 친다. 데이비드 소로우를 전공했지만, 장자의 <장자>와 불교경전 <벽암록>도 번역했다. 서양고전음악 팬들은 한 권씩 가지고 있을만한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안동림의 불멸의 지휘자>를 내놓았다. 이번에 나온 <내 마음의 아리아>는 포털 사이트에 1년 3개월간 연재한 글을 다음어 묶은 책이다.
그에게 ‘노래’는 돌아갈 수 없는 고향과 유년기의 원체험에 맞닿아있다. 일제 시대 평양에서 태어나 중학교 1학년 때 해방을 맞았다. 한국말은 하지만 한글은 못써서 답답해하던 그는 음악 시간에 ‘광명’을 찾았다. 아일랜드니 스코틀랜드니 하는 이름 모를 서양 어느 나라의 노래들을 따라불렀다. 그러나 음악 선생은 ‘자본주의 사상이 짙은 유해분자’라는 낙인이 찍혀 교단에서 사라졌고, 사흘이면 끝나리라 여겼던 피난 세월은 60년이 넘게 흘렀다. 한 조각 고향 소식, 가족 안부 듣지 못한 그에게 성악곡은 “가슴을 저미는 절실한 향수의 노래”였다. 그는 “아리아는 곧 오페라”라고 단언했다. 오페라의 줄거리라고 해봐야 “사랑하다 질투하다 죽었다”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오페라를 듣는 건 아름다운 아리아 때문이다. “사람을 쥐고 흔드는” 노래 때문이다.
그는 이 시대 가장 유명한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에 대해 “처음엔 참 좋았다. 그런데 나중엔 강호동처럼 소리만 질렀다”고 평했다. 오히려 “화통 삶아먹은 것처럼 목소리가 크진 않지만 고음부터 저음까지 두루 감동적인” 주세페 디 스테파노를 높이 평가했다.
안 선생은 주로 이탈리아어로 된 아리아의 원문 가사를 직접 한글로 번역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오역을 바로잡았다. 양악이 일본을 통해 수입되면서 일본식 오역이 그대로 통용됐고, 해방 60년이 넘도록 오역이 바로잡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리골레토>의 ‘바람에 날리는 깃털같이’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깃털’은 어찌된 일인지 ‘갈대’로 알려져 있었다.
책과 함께 유니버설뮤직과 EMI에서 동명의 음반도 출시됐다. 안 선생은 “오페라는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가 전성기였다”며 “그때에는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노래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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