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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 중의 보수 독서가,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

나는 이런 류의 독서, 특히 고전 가이드를 좋아라 한다. 이런 책은 고전을 읽고 싶게 한다.



고전 문학은 어떻게, 왜 읽는가. 숱한 평론가와 독서 애호가들이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미국의 인문학자이자 평론가 해럴드 블룸도 그중 한 사람이다. 문학 비평에 있어서 블룸의 위치는 ‘보수 중의 보수’라 할 만하다.

그는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원제 How to read and why)에서 고전을 읽는 몇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그 첫번째가 “머릿속에서 은어를 제거하라”다. 그가 ‘은어’라고 말한 것은 “한 분파나 수상쩍은 비밀 집회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용어”다. 즉 블룸은 역사주의, 페미니즘, 해체론, 마르크스주의 등 근대적 주체를 해체하고 저자를 죽이는 모든 사조에 저항한다. 블룸에 따르면 독서의 즐거움은 사회적이기보다 이기적이다. 책을 더 잘, 깊이 읽는다고 타인의 삶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독서를 통해 이웃이나 주위 사람을 개선하려고 시도해서도 안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튼튼하게 하고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깨닫기 위해 책을 읽는다.”

독서의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 후 블룸은 “내면의 빛에 비추어” 읽어볼 만한 장·단편 소설, 시, 희곡 60여편을 제시한다.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월트 휘트먼, 마르셀 프루스트를 거쳐 윌리엄 포크너, 코맥 매카시까지 이른다. 새 장르를 소개할 때마다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로 이정표를 제시하는데, 그렇다 해도 블룸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다. 집중력이 높고 섬세한 독자만이 이 이정표와 지형을 읽어낼 수 있겠다.

블룸은 현대의 단편 소설을 체호프파와 보르헤스파로 나눠볼 것을 제안한다. 체호프 스타일이 현실에 대한 우리의 갈증을 충족시켜 준다면, 보르헤스 스타일은 현실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갈구하는지 보여준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플래너리 오코너가 체호프파라면, 이탈로 칼비노는 보르헤스파다.

이후 문학계의 지도를 새로 그린 동시대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찬양하는 데 많은 분량이 할애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최초의 소설이자 가장 뛰어난 소설이지만 소설 이상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산초와 돈키호테의 대화다. 둘은 서로의 말을 들음으로써 자아를 더 새롭고 풍부하게 발전시킨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는 <햄릿>이 소개된다. 블룸은 문학적 위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성경>에 유일하게 맞먹는다고 단언한다. “햄릿의 정신과 그 정신을 확장하는 데 있어 그가 사용한 언어는 신이 사용한 언어보다 아직까지는 더 넓고 더 민첩하다”고 말한다.

옮긴이가 쓴 대로 블룸이 원하는 건 결국 ‘강한 독자’다. 약한 독자가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파악할 때, 강한 독자는 작품을 자신의 시각에 비추어 창조적으로 오독한다. 오독의 과정을 통해 작품에 지지 않는 강한 자아를 형성하기. 이 책을 발판삼아 꿈꿔볼 만한 목표다. 윤병우 옮김.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