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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이슈

사회 없는 예술은 가능한가




휴가라고 칼럼 차례 바꿔달랄 수도 없고, 미리 써놓고 갈 수도 없고. 




때로 예술은 썩은 연못에 피어난 연꽃처럼 보인다. 우연히 마주친 예술의 감동은 삿된 세상에 찌든 영육을 고양시키곤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고결한 연꽃조차 썩어들어가는 진흙 속에서 양분을 퍼올리고 있으니, 예술도 다를 바 없다. 예술은 속세의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다. 이를 모르는 예술가는 무지하거나 어리석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예술감독과 대표의 동반 사퇴를 불러온 서울시향 사태의 발단은 박현정 전 대표의 폭압적 경영방식이었다.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에 나왔다시피 박 전 대표는 “방만한 행태를 바로잡겠다”는 이유로 직원들에게 막말을 일삼았고, 박 전 대표 취임 2년 만에 이를 견디지 못한 직원 절반이 퇴사했다. 법적으로 죄가 되는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드러난 사실만으로 박 전 대표는 경영인으로서 실격이다.

박 전 대표가 분란만 일으키고 떠났다면, 정명훈 전 예술감독은 서울시향의 존재 가치를 고양시켰다. 그가 포디엄에 선 지난 10년간, 서울시향이 음악적으로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나 서울시향의 음악적 성과가 정 전 감독을 둘러싼 불투명한 예산 집행 의혹까지 가릴 수는 없다. 세계적 지휘자를 클래식 변방의 단체로 끌어오기 위해선 고액 연봉과 각종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서울시민의 세금이 들어간 이상, 예산의 집행 방식은 투명해야 한다. 게다가 일정 수준에서 공공의 가치를 구현해야 하는 시립 예술단체의 리더는 음악 너머의 세상에까지 관심의 촉수를 뻗어야 한다. 정 전 감독은 “난 음악밖에 모른다”고 뒷짐 지고 있을 게 아니라, 음악 바깥 사회의 목소리에 더 많이 귀 기울였어야 했다.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의 대만 출신 멤버 쯔위 사태도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쯔위는 MBC TV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제작진이 준비해준 청천백일기를 들었다가 곤욕을 치렀다.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는 일각에서 대만의 분리독립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하는 중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상징이다.

물론 데뷔한 지 4개월 된 16세의 쯔위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갓 데뷔한 아이돌 그룹은 말, 행동, 표정, 옷차림까지 기획사, 제작진의 주도로 연출된다. 그렇다면 이 사태의 책임은 청천백일기가 내포한 의미를 모른 채 쯔위에게 들게 한 MBC, 초췌한 모습의 쯔위를 카메라 앞에 세워 중국팬을 향해 과도한 사과문을 읽게 한 기획사 JYP에 있다. 특히 JYP의 박진영 대표는 “쯔위는 지난 며칠 동안 많은 걸 느끼고 깨닫고 반성했다, (…) 부모님을 대신하여 잘 가르치지 못한 저와 저희 회사의 잘못도 크다고 생각한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1차적인 잘못은 쯔위에게 돌린 뒤, 자신과 회사는 그를 통제하지 못한 2차적이고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는 것이다. 이는 ‘부모님 대신’이라는 어른으로도, 대형 연예기획사의 대표로도 어울리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다.


정 마에 사진보다는 쯔위 사진이 짤방으로 낫겠지. 


더 놀라운 건 중국 시장을 대상으로 활동하겠다는 연예사업가들이 중국 문화와 정서에 거의 무지했다는 사실이다. 한국 대중을 상대로 사업을 하겠다는 이들이 독도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대중의 정서를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이돌 그룹의 본령은 춤, 노래, 연기 등 예능에 대한 소질이겠지만, 아무리 빼어난 예능 감각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해당 시장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인기도 얻을 수 없다.

지휘자에게 사회의 공기가 돼 달란 말이 아니다. 아이돌 그룹이 아시아 역사를 숙지해야 한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세상 돌아가는 일은 모른 채 마음껏 춤추고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마누엘 칸트는 “직관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조금 바꿔보자. 예술 없는 사회는 공허하고, 사회 없는 예술은 맹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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