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시상식 전후는 디캐(카)프리오 덕분에 이런저런 쓸 거리가 많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유례 없이 정치·사회 이슈가 넘쳤다. 남녀 주·조연상 후보에 흑인 배우가 전무하다는 사실에서 촉발된 논란은 흑인 사회자의 아시아인 비하 농담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졌다. 수상자들은 약속이나 한 듯 성소수자, 성추행, 인종 등 민감한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그럼에도 올해 아카데미의 주인공을 한 명 꼽는다면 역시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라 해야겠다. 디캐프리오는 22년의 기다림, 4번의 수상 실패 끝에 오스카 트로피를 거머쥐는 데 성공했다.
사실 아카데미의 역사를 살피면 디캐프리오보다 더 고생한 이들도 많다. 알 파치노는 8번의 후보 지명 끝에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피터 오툴은 남우주연상 후보로만 8번 올랐으나 결국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디캐프리오의 수상 혹은 수상 실패에 관심이 쏠렸던 이유는 그가 엄청난 스타이기 때문이다.
디캐프리오는 타고난 듯 스타가 됐다. 19살에 찍은 <길버트 그레이프>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더니, 22살엔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전 세계 소녀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스타덤의 정점은 역시 <타이타닉>(1997)이었다. 영화 흥행사를 다시 쓴 이 작품으로 디캐프리오는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로 거듭났다.
근래 고생이 많았던 디캐프리오. <레버넌트>와 <블러드 다이아몬드>
“스타덤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한 것일까. <타이타닉> 이후의 디캐프리오는 블록버스터 대신, 미국을 대표하는 명장들과의 작업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우디 앨런,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틴 스코세이지와 호흡을 맞췄다. 특히 스코세이지는 한때의 단짝 로버트 드니로 대신 디캐프리오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았다. 타고난 스타성과 배우로서의 재능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던 1990년대와 달리, 이 시기 디캐프리오는 자신의 연기력을 인정받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는 느낌을 준다. ‘디캐프리오가 오스카상을 의식한 연기를 한다’는 비아냥이 나온 것도 이때부터다.
디캐프리오는 개의치 않았다. 최고의 미녀들과 잇달아 연애를 즐기는 할리우드 스타의 삶을 살면서도 삶의 어두운 측면을 드러내는 영화에 지속적으로 출연했다. 자신의 인기를 이용해 환경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환경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11번째 시간>을 직접 제작했다. 아카데미 수상소감을 22년간 준비하기라도 한 듯, 재빠르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뒤에는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최근엔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배우들이 ‘디캐프리오의 길’을 걷고 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는 귀족적인 뱀파이어와 남성미 넘치는 늑대인간이 평범한 인간 소녀를 사이에 두고 사랑의 대결을 펼친다는 내용이다. 5년만 지나도 잊혀질, 굳이 찾아볼 영화는 아니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로 스타덤에 오른 뱀파이어 역의 로버트 패틴슨과 소녀 역의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이후 전혀 다른 색깔의 영화에 출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패틴슨은 자본주의의 기괴함을 그린 <코스모폴리스>나 할리우드의 이면을 그린 <맵 투 더 스타> 같은 영화에 출연했다. 스튜어트는 예술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를 그린 <클라우즈 오브 실스마리아>, 존재의 허무에 사로잡힌 대학원생을 연기한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 등을 골랐다. 두 배우가 <트와일라잇> 이후 출연한 영화들의 관객을 모두 합해도 <트와일라잇> 한 편의 관객에 못 미칠 텐데도 그들은 그런 선택을 했다.
영화 매체의 속성상, 영화배우는 대중의 취향에 민감한 엔터테이너인 동시에 영화 자체의 논리에 복무하는 아티스트다. 두 역할을 균형있게 잘하면 이상적이겠지만, 그런 일이 뜻대로 되진 않는다. 20대 초반에 스타가 된 디캐프리오, 패틴슨, 스튜어트는 이후 스타덤을 뒤로하고 미지의 길을 택했다. 누군가는 이런 선택을 ‘허영’이라고 부르겠지만, 때론 그런 허영이 우리의 삶에 작은 품위를 허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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