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6부작 텔레비전 시리즈 '리버'를 보다. 영국, 경찰, 티비 시리즈라 했을 때 떠올릴법한 정서는 '우울'이다. '리버'도 다르지 않다. 6부작, 6시간에 걸친 시간동안 내내 우울하다. 주인공이 70년대 디스코 'I love to love'에 맞춰 2인무를 추는 마지막 장면에서조차 우울하다.
형사 존 리버와 파트너 스티비 스티븐슨이 함께 차를 타고 순찰을 시작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곧 스티비는 이미 죽은 사람임이 밝혀진다. 말하자면 리버는 죽은 이를 본다. '식스 센스'의 성인 버전이다. 하지만 '리버'는 '식스 센스'의 아이처럼 유령을 두려워하기보단 주로 짜증과 화를 낸다. 가끔 유령의 멱살을 잡고 두드려 패기도 한다. 다른 사람 눈에는 허공에 주먹질 하는 걸로 비춰지는게 문제긴 하다.
이쯤되면 형사와 유령 형사의 버디물이라고 짐작할 법하다. 유령의 직관과 인간의 행동력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구도가 그럴듯하다. 하지만 '리버'는 다른 길을 걷는다. 유령이 자주 나타나 무언가 말을 건네기는 하는데, 대부분 사건 해결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다. 파트너 스티비의 유령 뿐 아니라, 다른 이유로 죽어간 사건 관계자들의 유령도 종종 나타나는데 대부분 사건 해결의 단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억울함을 호소하거나, 사건을 헛짚는 리버를 빈정댈 뿐이다. 가장 특이한 유령은 옛날 내복을 입은 채 나타나는 남자다. 이 유령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나타나 리버의 속을 긁는 이야기를 한다. 리버는 매번 광분한다.
'리버'의 등장인물들. 가운데가 리버, 가장 왼쪽이 옛 경찰 파트너이자 지금은 죽은 스티비.
그러니 회차가 거듭될수록 의심이 생긴다. 리버가 유령을 보긴 보는건가. 유령은 뭔가 얘기를 하긴 하는데, 곰곰 생각해보면 리버가 이미 아는 얘기들이다. 리버의 성질을 돋우는 말들도 결국 리버의 성격적 약점을 공략한다. 그러니, 유령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리버의 직관 혹은 무의식 아닌가. 리버는 유령의 도움을 받는 척 하며 이미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 아닌가. 어찌된 일인지 경찰 조직은 제정신이 아닌 듯 혼잣말을 하고 허공에 주먹질을 하는 리버를 눈감아준다. 리버는 유령 혹은 자신의 죄의식과 싸우며 사건을 해결해나간다.
시즌2는 소식이 없다. 유령하고 이야기하는 이상한 형사 얘기를 또 보고 싶은 시청자들이 많지 않았나보다.
스웨덴 배우 스텔란 스카스카드가 리버 역을 맡았다. 스카스가드는 사건 해결에 출중한, 하지만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형사 역을 너무나 훌륭히 소화했다. 배우의 존재감이 작품의 50% 이상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역시 '토르'의 작은 역할에 그칠 배우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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