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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철학자와 테러리스트의 만남: 사르트르와 바더의 경우

트위터에서 제2의 전성기를 누리고 계신 JS가 한 젊은 논객에게 "영어 공부를 하라"고 권한 코멘트를 읽었다. 그렇다. 나도 한때 짧게나마 교환학생으로 미국에서 영어 강의를 한 학기에 4개씩이나 듣던 몸이다. 번역본이 실하지 않단 이유로 <유년기의 끝>이나 <어둠 속의 웃음소리> 같은 소설을 원문으로 읽던 몸이란 말이다. 영어 텍스트를 능란하게 읽을 수 있으면(그리고 쓸 수도 있으면), 인식의 지평이 지금보다 훨씬 넓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돌아보니 고만고만한 한글 텍스트만 너무 많이 읽어왔다. 어디선가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어로 번역된 텍스트만 줄창 각주로 다는 것을 보고 일본학계의 성취라든가 자신감에 대해 놀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한국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당장은 누가 좋은 텍스트를 번역해주는 사람도 없지 않은가. 


마감이 끝나서 이리저리 (인터넷을) 돌아다니다가, 같은 곳만 빙빙 돌고 있음을 느꼈다.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약간의 반성으로 오래전에 즐겨찾기 해두었다가 좀처럼 찾지 않던 사이트에 들어갔다. 세계 여러 언론의 문화 관련 기사들을 스크랩해두는 곳이다. 들어가보니 가장 위에 슈피겔지의 영문판 기사가 올라 있었다. 제목은 '철학자와 테러리스트'. 낚여서 클릭했고, 낚일만큼 흥미 있었다.


내용은 장 폴 사르트르와 안드레스 바더의 만남에 관한 것이다. 당시 69세였던 프랑스의 노철학자는 독일의 감옥에 갇혀있던 적군파 수장 안드레스 바더를 면회간다. 1974년 12월 4일의 일이다. 




사르트르(위)와 바더


여론은 사트트르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노벨상 수상자이자 세계적인 스타 철학자인 그는 면회를 마친 후 독일 감옥의 열악한 시설에 대해 비난했다. 바더가 방음 처리됐으며 인공 조명이 항상 켜진 독방에 수감됐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그것이 "나치와 같은 고문은 아니지만, 심리적 혼란으로 이끄는 또다른 형태의 고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른 경로로 알려진 바로는, 당시 바더가 수감된 교도소는 새로 지어져 꽤 괜찮은 시설을 갖췄으며, 텔레비전과 소규모 도서관도 이용할 수 있었다. 오늘날 몇몇 전문가들은 당시 반쯤 실명 상태였던 사르트르가 방을 착각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론은 바더에 대한 면회와 이후의 코멘트가 사르트르의 최대 실책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에 슈피겔은 당시 면회에서 사르트르와 바더가 나눈 대화를 입수했고, 실상은 알려진 것과 조금 달랐다는 점을 보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둘의 만남은 냉랭했다. 


사르트르 : 적군파의 행동은 민중들에게 동의를 얻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바더 : 20%의 민중이 우리에게 동조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르트르 : 알아요. 그 통계는 함부르크에서 나온 것이지요. 

바더 : 합법적, 불법적인 소규모의 그룹들이 독일에서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습니다. 

사르트르 : 이런 행동들은 브라질에선 정당화될지 모르지만 독일에선 아닙니다. 

바더 : 왜요?

사르트르 : 브라질에선 상황을 바꾸기 위해선 독립적인 행동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필수적인 사전 작업입니다. 

바더 : 여기하고 다른 이유가 있나요?

사르트르 : 여긴 브라질과 똑같은 유형의 프롤레타리아가 없습니다. 


둘의 만남은 사르트르와 적군파의 이해가 맞았다는데서 찾을 수 있다. 나치에게 전쟁 포로가 된 적이 있는 사르트르는 서독 군대가 '나치 독일'의 계승자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적군파는 레지스탕스의 일종이라 여겼다. 적군파 역시 사르트르를 통해 바더에 대한 주의를 환기시킴으로써 그가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게 하려 했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이전부터 적군파가 정부의 주요 요인을 암살하는데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자, 바더는 그를 좋지 않게 여겼다. 통역을 사이에 둔 둘의 대화는 무척 딱딱했다고 한다. 둘의 심신이 건강치 못했다는 점도 면회가 생산적이지 않은 원인이 됏다. 이미 2차례의 심장 발작을 겪은 적이 있는 사르트르는 지적 능력이 감퇴하고 있었고, 바더 역시 단식 투쟁의 여파에서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혁명과 투쟁 전략에 대한 바더의 횡설수설을 사르트르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르트르는 훗날 바더가 '꼴통'이라고 말했고, 바더는 사르트르가 "날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둘의 만남은 60분만에 끝났다. 




영화 <바더 마인호프>의 포스터와 영화 속 안드레아스 바더. 테러리스트라기보다는 갱스터같음. 


원문은 여기(http://www.spiegel.de/international/germany/transcript-released-of-sartre-visit-to-raf-leader-andreas-baader-a-88139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