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작가란 무엇인가1>에 이어 <작가란 무엇인가2>도 출간됐다. 정확한 판매량은 알 수 없지만, 왠지 이 시리즈가 책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선 꽤 인기를 끈 것 같다. 이 책의 포맷을 거의 그대로 따서 한국 작가들을 다룬 책을 보았기 때문이다.
1편에서 그랬던 것처럼 2편에서도 인상적인 몇 구절을 옮겨 적어본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독창적이지 않은 작가들은 과거나 현재의 다른 많은 이들을 모방하기 때문에 다재다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예술적으로 독창적이려면, 자기 자신을 베끼는 것 말고는 다른 게 없지요.
나보코프(1899~1977)
조이스 캐럴 오츠
각각의 책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이고, 독립적인 것입니다. 어떤 책이 그 작가의 첫 번째든, 열 번째든, 오십 번째든 문제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비평에 대해) 저처럼 많은 책을 펴낸 작가들은 필연적으로 코뿔소처럼 두꺼운 가죽이 생깁니다. 두꺼운 가죽 안쪽에는 연약하고 희망에 찬 나비 가은 영혼이 깃들지만요.
(여성 작가로서의 이점에 대해)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겠지요.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 비평가들이 언론에서 작가들을 일류, 이류, 삼류로 나누는 목록에 진지하게 포함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할 자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경쟁에 대한 의식도 별로 없고 관심도 없거든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보르헤스는 결코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무엇인가를 먹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성 경험이 없다고 말할 것 같은 사람입니다. 그에게는 먹고 마시거나 성적인 일들은 전부 부차적일 것 같아요. 만일 그가 이런 일들을 했다면, 그저 예의상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말할 것 같은 사람이지요. 생각하고 책을 읽고 무엇인가에 골몰하고 글을 쓰는 것만이 보르헤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면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다른 인물보다 두드러지게 해달라는 어떤 등장인물들의 요청을 깨달았을 때, 이야기가 자신만의 법칙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입니다. 작가가 원하는 대로 등장인물을 빚을 수 없다는 것과 그들이 어떤 자율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 명백해집니다.
한 권의 책 쓰기를 마쳤을 때 저는 텅 빈 기분, 불안함을 느낍니다. 소설이 저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지요. 하루하루 지나면서 저는 소설을 빼앗겼다고 느낍니다.
귄터 그라스
진실은 대체로 매우 지루합니다. 거짓말이 그걸 덜 지루하게 해주지요. 그런 데는 해가 없습니다.
(독일 통일에 대해) 어런 상황은 어떤 누구도 통일이 동독의 경제는 말할 것도 없고 문화도 심하게 망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을 확증합니다. 이래서는 안 되지요. 저는 조정할 수도 없고 위험 신호에 반응하지도 않는 열차에 타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플랫폼에서 서서 기다렸습니다.
토니 모리슨
(동트기 전 글을 쓰는 습관에 대해) 커피를 마시고 나서 동이 터오는 걸 바라보지요. 그랬더니 그 분(어느 작가)이 "아, 그것이 의식이네요"라고 말하더군요. 이 의식이 제가 비세속적이라고 부르는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작가들은 모두 그들이 접촉하려는 공간, 전달하려는 공간, 이 신비한 과정에 참여하고자 하는 공간에 접근하는 다양한 방법을 고안해냅니다.
(편집자에 대해) 그들은 당신을 사랑하지도, 당신 작품을 사랑하지도 않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가치는 칭찬이 아니라 그런 점입니다. 알고는 있지만, 글을 쓸 당시에는 고칠 수 없던 부분을 정확히 집어내는 편집자를 보면 때로는 신비한 느낌이 들어요.
첫번 째 책을 쓴 이유는 단지 그런 책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완성해서 읽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꽤 훌륭한 독자거든요.
원고가 완성되기 전에는 절대로 계약하지 않았는데, 숙제처럼 느껴지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등장인물을 창작할 때 주변 사람을 사용하는지에 대해) 다른 사람의 삶을 훔쳐다가 자신을 위한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면에서 아주 큰 문제입니다.
저는 등장인물을 모두 통제합니다. 그들을 아주 주의 깊게 만들어내지요. (...) 등장인물이 작가 대신 책을 쓰게 내버려두어서는 안됩니다.
역사가 구속복이 되어서 압도하고 제한해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잊혀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역사를 비판하고, 시험하고, 도전하고, 또 이해해야 합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가 아니라 문학의 위대한 대변인이 되고 싶지 않는지에 대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저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제 작품이 다른 집단이나 더 커다란 집단으로 동화될 수 있다면 더욱 좋지요. 하지만 말씀하신 요청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조이스는 그런 요청을 받지 않았지요. 톨스토이도 그렇고요.
토니 모리슨(1931~)
주제 사라마구
따지고 보면 저는 상당히 평범하지요. 이상한 습관도 없습니다. 극적인 사건도 만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글 쓰는 행위를 낭만화하지도 않습니다. 글을 쓰면서 겪는 고뇌를 토로하지도 않지요. 우리가 작가에 대하여 들어온 것들, 아무것도 쓰지 않은 빈 공책이라거나 작가의 슬럼프와 같은 모든 걸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만일 인간이 정말로 우주에서 살 수 있게 된다면 아마도 전 우주를 감염시킬 것입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이 지상에서만 존재하는 바이러스의 일종이겠지요.
살만 루슈디
(<샬리마르>에 대해) 부니의 아버지인 현자 피야레랄이 과수원에서 죽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 장면을 견디기 힘들어서 책상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지금 뭐하는 거지? 이 사람은 내가 만들어낸 인물일 뿐인데.'라면서도. 카슈미르 마을이 파괴되는 순간도 비슷했어요. 그 구상 자체를 견디기 힘들었어요.
우리 시대에는 개인적인 삶과 공적인 삶 사이의 공간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에 대하여 일언반구도 없던 제인 오스틴을 보세요. 오스틴의 소설에서 영국 군대의 역할은 파티에서 멋지게 보이는 것뿐입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피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공적인 삶에 대해 말하지 않고도 등장인물의 삶을 온전하고 심오하게 설명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일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습니다.
스티븐 킹
(인터뷰어의 말) 그(스티븐 킹)는 여전히 환자였지만, 매일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레드삭스의 홈구장인 펜웨이 파크로 원고를 가져가서 회가 바뀌거나 투수를 교체하는 사이에 편집하곤 하였다.
쓰는 동안 모름지기 책이란 유리창을 뚫고 날아오는 벽돌처럼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게 기억났지요. 다시 말하자면 제가 쓰는 책이 개인적인 공격의 일종이길 바랐습니다. (...) 책은, 어떤 누군가가 탁자를 가로질러 돌진해서는 독자를 움켜쥐고 한 대 후려갈기는 것과 같아야 한다고요.
(읽기 고통스러운 소설로 일부 독자를 잃을지 모른다는 우려에 대해) 저는 어느 정도의 팬을 잃어도 괜찮을 만큼 아직 많은 팬이 있습니다.
(스탠리 큐브릭이 영화화한 <샤이닝>에 대해) 그 영화는 훌륭한 세트와 스테디캠 촬영으로 멋들어지게 만들어졌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런 것을 엔진이 없는 캐딜락이라고 부릅니다. 마치 조각품처럼 쳐다보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지요.
오에 겐자부로
원칙적으로 무정부주의자입니다. 커트 보네거트는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존경하는 불가지론자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저는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무정부주의자입니다.
핵무기라는 문제는 과거에 그랬듯이 현재까지도 저한테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반핵 행동주의는 모든 현존하는 핵무기에 대해 반대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 세상은 전혀 변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그 운동의 창시자로서의 저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희망이 없는 운동입니다.
(스웨덴에서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전화를 끊고 자리로 돌아가서 앉은 가족들에게 노벨상을 받았다고 이야기해주었지요. 아내가 그러더군요. "아, 그래요?" (...)그리고 다른 두 아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요. 걔들은 그냥 조용히 자기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오에 겐자부로(1935~)
'텍스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군대가 직접 매춘부를 고용한다면?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0) | 2015.06.07 |
---|---|
군인의 삶을 통해 본 세계사, <군인> (0) | 2015.06.07 |
학술서적 북디자이너는 수도사와 같다. 콜롬비아대학출판사 북디자이너 이창재씨 (0) | 2015.05.21 |
518의 철학적 의미 <철학의 헌정> (0) | 2015.05.18 |
삼겹살을 안 먹을 수 있을까, <동물을 위한 윤리학> (0) | 2015.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