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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 직접 매춘부를 고용한다면?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실제 집필 기간이 얼마나 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송병선 역/문학동네)는 태초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이후에는 술술 써내려가지 않았을까. 상황 설정이 기발하고, 인물들의 대립 구조가 명확하고, 주인공의 운명이 비교적 예측가능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아무튼 독자는 이렇게 쓰여진 소설을 재빠르게 읽어내려갈 수 있다. 


페루 육군의 행정장교인 팔탈레온 판토하 대위는 아마존 밀림에서 근무하는 군인을 위한 '특별봉사대'를 조직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는다. 오지에 근무하느라 욕구불만에 시달린 병사들이 인근의 부녀자들을 성폭행하는 사태가 잦아지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군에서 은밀하게 순회 집창촌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위안부'다. 근면성실하고, 군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높은 판토하는 이 기괴한 명령에 당황하지만, 곧 명령을 지나치게 훌륭하게 수행해 나간다. 그는 민간인 신분으로 위장한 채 포주 노릇을 한다. 소설의 다른 한 축은 아마존 민간에 퍼진 일종의 사이비 종교인 '형제회' 이야기다. 이들은 작은 동물을 십자가에 못박는 행위로 신앙고백을 하는 단체인데, 국가와 기성 종교가 위무하지 못한 민중의 영혼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페루의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1936~)


특별봉사대는 군인의 육체를, 형제회는 민간인의 정신을 위로한다. 특별봉사대와 형제회의 이야기는 작은 교집합만 가진 채 진행되는데, 결국 파국적 결말을 맞이한다는 점은 같다. 이는 예상된 결말이기도 하다. 벽지 근무 병사들의 욕구불만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작금의 군대에 현실적인 고민이겠으나, 그 해결책이 군부가 직접 운영하는 '봉사대'일 수는 없다는 점은 명확하다. 작가는 서문에서 '특별봉사대'가 페루에 실제로 있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허리 아래와 위가 따로 노는 세간의 이중적 인식은 항구적이며 공식적인 성매매를 허용하기 어렵다. 판토하는 임무에 지나치게 몰입한 나머지, 군 상층부의 위선을 깨닫지 못하고 공식과 비공식 영역의 경계를 흐리게 한다. 병사의 수와 욕구, 매춘부의 수, 업무시간, 이동거리 등을 정확히 계산해 최대의 효율을 추구하는 판토하는 마치 20세기 초반의 테일러주의 경영인처럼 행동한다.


소설은 형제회의 교리를 명확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정황을 고려하면 민중 토착신앙에 근거한 유사종교로 보인다. 청빈을 강조하고, 교단의 위계를 거부하며, 그래서 결국 국가의 지배 질서와도 상충하고, 일정 수준의 샤머니즘, 애니미즘적 의식을 강조한다. 오랜 기간에 걸쳐 제도화된 나머지 토착성, 원시성을 삭제한 기성 종교의 빈틈을 파고든다. 판토하가 대낮에 인정할 수 있는 공식, 밤에 추구해야할 비공식의 경계를 흐려 파국을 맞았듯이, 형제회도 기성의 질서에 저도 모르게 도전했다가 탄압을 피하지 못한다. 


작가는 마치 정신없이 교차 편집되는 영화처럼 여러 상황의 대화 장면을 구분 없이 서술한다. 독서의 혼란은 초반 50페이지도 안돼 해소된다. 오히려 장면이 전환될 때마다 이를 설명하는 뜸을 들일 필요가 없어서 속도가 빠르다. 군 기밀문서, 편지, 라디오 뉴스 대본, 신문 기사 등의 형식을 차용해 서사를 전개시키는 것도 1973년 출간 당시로서는 꽤나 신선했을 것 같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사고실험은 예기치 않은 유머와 예상된 파국으로 끝난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영화화도 함께 추진했는데, "영화계의 황당한 술책"에 휘말려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고 전한다. 책이 출판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된 후, 작가는 자신이 판탈레온 판토하 대위라고 자처하는 남자의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작가는 그와의 만남을 거부했는데 이유는 "소설 속의 인물은 현실의 삶에 간여해서는 안된다"는 믿음에 충실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