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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깊고 새로운 자유-마당을 나온 암탉

아기 오리 초록이(위쪽)와 엄마 닭 잎싹(아래쪽)

말이 쉽지, 성인과 어린이 관객을 모두 만족시키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것이 가능키나 한가. 여러 세대의 관객층을 두루 행복하게 하면서 흥행과 작품성을 모두 거머쥔 애니메이션은 미국의 픽사, 일본의 지브리 스튜디오의 몇 작품 정도다.

28일 개봉하는 한국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이 그 ‘불가능한 임무’에 도전한다. 잊을만하면 한 편씩 한국산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이 개봉했지만 이 임무를 완수한 작품은 없었다.

원작은 2000년 초판이 나와 지금까지 100만부 이상 팔린 황선미 원작의 동명 아동문학이다. 이 작품은 초등학교 5학년 읽기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상업영화 명가 명필름과 애니메이션 제작사 오돌또기가 6년간 애니메이션을 공동 제작해 극장가 최고 성수기인 여름 방학 시장에 내놓았다.

대형 양계장의 좁은 우리 속 암탉들이 기계에서 흘러나온 모이를 먹고 있다. 암탉들의 눈동자에는 초점이 없지만 그 중 잎싹(목소리 출연 문소리)만은 남다르다. 잎싹은 매번 인간에게 내주던 알을 직접 품어보겠다는 꿈을 꾼다. 잎싹은 모이를 먹지 않고 폐계 흉내를 낸 끝에 뒷산의 웅덩이에 버려지는데 성공한다. 잎싹은 웅덩이를 가까스로 탈출해 늪 부근에 새 거처를 마련한다. 버려진 알을 발견한 잎싹은 그동안의 바람대로 알을 품고, 마침내 새끼를 부화시킨다. 태어난 새끼는 닭이 아닌 오리지만, 초록(유승호)이라 이름 붙여진 아기 오리는 잎싹을 엄마로 여겨 따른다. 늪지대 친구들, 먹이를 찾는 배고픈 족제비 사이에서 닭 엄마와 오리 아들은 자연의 이치를 조금씩 깨닫는다.

‘전체관람가’를 받은 이 애니메이션은 우선 어린이와 청소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을만한 설정과 장면들을 다수 배치했다. 늪의 동물들에게 살 곳을 소개해주는 ‘공인중개사’ 수달(박철민)은 원작에는 없는 코미디용 감초 캐릭터다. 박철민은 지금껏 출연했던 그 어떤 실사영화에서보다 많은 웃음을 선사한다. 속도감 있는 액션을 보여주는 ‘파수꾼 선발대회’ 장면 역시 어린이 관객의 시각적 쾌감을 만족시킬 듯하다. 주책스러워 보이는 엄마를 창피해하는 사춘기 소년의 심정, 엄마 품을 벗어나 새 세상으로 발을 딛는 순간의 기쁨과 두려움 등의 감정도 어린 관객들에게 호소할만하다.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는 아들과 그를 배웅하는 엄마.

 
그러나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이 상상도 못할 ‘과격한’ 주제의식과 결말이다. 잎싹은 모이를 먹고 알을 낳고 다시 모이를 먹고 알을 낳는 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고자 한다. 배부르고 안락한 양계장 바깥에는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지만, 잎싹은 순응적으로 모이를 먹는 대신 한껏 목을 빼 마당을 응시한다.

하지만 마당에 대한 잎싹의 동경은 더 많은 권력, 부, 공간과는 무관하다. 잎싹의 바람은 오직 알을 품는 것이다. 알을 품어 새끼를 낳으면 양계장의 질서가 아닌 자연의 질서에 동참할 수 있다. 인간의 뱃속으로 소비되는 알이 아닌, 생명의 순환에 기여하는 알을 생산할 수 있다. 한낱 양계장에 갇힌 수 천 암탉 중 한 마리에 불과했던 잎싹은 온전한 자유 의지로 그 거대한 질서에 뛰어든다. 원작을 읽지 않은 관객은 동종(同種)만의 생존이 아닌, 이종(異種)의 욕망과 생태계의 순환까지 고려하는 담대한 결말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자유’의 의미를 이토록 깊고 새롭게 해석한 영화는 실사, 애니메이션을 막론하고 최근에 본 적이 없다. 

<마당을 나온 암탉>이 성인 관객에게 호소할 수 있다면, 그건 원작의 창의적인 주제의식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그러나 원작이 있다고 해서 이 애니메이션의 성취를 깎아내릴 이유는 없다.

선녹음-후작화-본녹음 시스템을 통해 그림과 목소리 연기에 생기는 간극을 좁혔다. 선녹음과 본녹음 사이에 문소리는 실제 임신을 했고, 공교롭게도 개봉일을 즈음해 출산예정일이 잡힌 상태다. 천연기념물인 우포늪을 모델로 삼아 배경을 그렸다. <영혼기병 라젠카>, <둘리의 얼음별 대모험> 등을 기획했으며 이 영화로 연출 데뷔한 오성윤 감독은 “한국 애니메이션은 다시 좋은 이야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폼에 죽고 사는 나그네(목소리 최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