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여자와 20대 남자가 사랑할 수 있습니까. 사랑을 하는데 나이는 얼마나 중요합니까.
12일 개봉하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원제 The Curious Case of Benjamin Button)는 상영시간 166분에 달하는 낭만적인 멜로드라마입니다. 근래 고뇌하는 예술 영화, 유쾌한 오락 영화, 장대한 사극에 번갈아 출연해왔던 브래드 피트가 오랜만에 '뭇여성의 연인'으로 돌아왔습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원작 단편은 사랑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노인의 몸으로 태어나 차츰 젊어지는 기이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단편은 세월의 무상함, 나이가 사회생활에 미치는 영향 등을 그린 판타지입니다. 물론 남녀 간의 사랑도 포함되지만 플롯의 중심에 놓여 있진 않았죠.
1차 대전이 끝나가던 시기의 미국 뉴올리언스에 80세의 외모를 가진 아기 벤자민이 태어납니다. 아버지는 아이의 모습에 겁을 집어먹은 나머지 벤자민을 양로원 앞에 유기합니다. 벤자민은 외모가 비슷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성장합니다. 시간이 흘러 60대의 외모가 된 벤자민은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양로원에 온 6살 소녀 데이지의 푸른 눈동자를 기억 속에 간직합니다. 나이를 거꾸로 먹는 벤자민은 선원이 돼 세계를 누비고, 데이지도 성장해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됩니다. 젊어지는 벤자민과 나이가 들어가는 데이지는 세대를 초월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합니다. 한 여자에 대한 남자의 오래고 순수한 사랑을 그린다는 점에서 <포레스트 검프>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각본을 쓴 사람이 같군요.
벤자민과 데이지의 사랑은 심지가 굳습니다. 하지만 둘의 나이 차는 사랑의 여건을 갉아먹습니다. 중년의 외모를 가진 벤자민은 뉴욕의 데이지를 찾아갑니다. 직업적 경력과 외모 모두 절정에 오른 20대 초반의 데이지는 숱한 남자 동료들의 시선을 끌죠. 단 하나의 사랑에 안착하기엔 너무나 화려한 젊음입니다. 청년이 주어진 방종을 누리지 않을 이유가 없듯, 중년은 책임지지 못할 사랑을 할 여유가 없습니다.
벤자민과 데이지의 외모가 비슷해진 순간, 둘은 엇갈리기만 했던 사랑의 기쁨을 누립니다. 벤자민은 안정된 삶을 누리고, 데이지는 젊음의 방황에서 벗어나 옛 사랑을 되찾을 준비가 됐죠.
세월은 다시 흐릅니다. 벤자민은 가장 아름다운 시기로 들어갑니다. 여전히 멋진 45세의 브래드 피트는 현대 촬영 기술의 도움을 받아 빛나는 외모를 뽐냅니다. 반면 데이지의 아름다운 날은 갔습니다. 허벅지엔 군살이 붙었고, 머리결도 탄력을 잃었습니다. 데이지가 남자친구의 아름다움을 질투할 나이는 아닙니다만, 갈수록 시들어가는 자신의 육체에 한숨짓지 않을 도리는 없겠죠. 게다가 이 중년 여성은 남편뿐 아니라 아이의 아버지 역시 필요로 합니다. 아버지는 아버지의 나이에 걸맞은 외모를 갖춰야 합니다.
사랑엔 국경도 없다는데, 나이차를 왜 따지겠습니까. 단지 비슷한 나이대의 사람끼리 사랑하기 쉬운 이유는, 그들이 누린 삶의 경험, 향유한 문화, 외모가 비슷하기 때문일 겁니다. '사랑'이라는 위대한 어휘 앞에 이 조건은 사소해 보이지만, 때론 사소한 틈이 둑을 무너뜨리는 법이죠. 당신의 사랑은 그 모든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을 만큼 굳건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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