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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이슈

안도와주는게 도와주는 것, 부산영화제와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서 서병수 부산시장이 개막인사를 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너는 안도와주는 게 도와주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일처리가 서툰 사람을 놀릴 때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문화의 영역에서 이 농담은 종종 진리가 된다. 특히 관이 후원하는 문화행사의 경우가 그렇다. 정확히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않는다”는 원칙이 유지될 때 문화행사가 성공하고 관도 체면을 살린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출범 초기에 빠르게 자리잡은 배경에도 이런 원칙이 있었다. 문화 관료로 잔뼈가 굵었던 김동호 초대 집행위원장은 관의 간섭을 막기 위해 온갖 수를 다썼다. 당시엔 영화제 출품작도 규정상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했다. 그러나 영화제에는 온갖 자유로운 사상과 표현 방식의 영화가 출품된다. 만일 심의가 이뤄진다면 이런 영화들은 상영될 수 없었다. 


김 위원장은 “영화 프린트가 늦게 들어온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심의위원들을 부산의 여관방으로 불러모아 ‘느슨하게’ 심의하도록 유도했다. 심의 규정을 위반한 영화도 더러 있었으나, 김 위원장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상영을 강행했다. 다행히도 2회 영화제까지 공연윤리위원회는 별다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고, 3회부터 영화제 출품작은 심의에서 제외한다는 예외조항이 생겼다. 바다 건너 풍문으로 제목만 들었거나 수입됐다 해도 이리저리 잘려나간 영화들에 상심했던 영화팬들은 부산영화제에 열광했다. 관객의 호응은 영화제 성공의 밑바탕이 됐다. 


올해 이런 원칙이 훼손된 사례가 두 건 있었다. 광주비엔날레는 홍성담 화백의 걸개그림 ‘세월오월’의 전시를 불허했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작품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 김기춘 비서실장의 허수아비로 묘사한 부분을 문제삼았다. 관계자의 사퇴, 작가들의 작품 철수 소동이 이어졌다. 이용우 광주비엔날레 재단 대표는 “홍 화백의 작품은 광주시의 돌출적인 대응이 없었다면 걸렸을 것”이라고 말해, 작품 철회에 시가 개입했다는 점을 시사했다. 출범 20주년을 맞은 비엔날레는 인권·문화 도시인 광주의 위상을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실추시켰다. 


그로부터 1달 뒤 부산국제영화제에도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세월호 구조 과정의 난맥상을 다룬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이 상영중단 압력을 받은 것이다. 영화제 조직위원장이자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서병수 부산시장이 “상영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고, 중앙정부에서도 국고 지원 중단 등을 거론하며 상영을 막으려 한다는 소문이 불거졌다. 부산이 광주와 달랐던 점은, “부산국제영화제는 외압에 의해 상영을 취소한 사례가 없다”며 <다이빙벨>을 예정대로 상영했다는 사실이다.


지역 문화행사에 정치적 이유를 들어 개입하려 한 지자체와 중앙정부는 멍청했다. 그 이유는 이번 사태로 인해 작품의 위상이 오히려 강화됐기 때문이다. <다이빙벨>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출품작 312편 중 1편이었고, 상영작 발표 기자회견 당시에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세월오월’ 역시 광주비엔날레 본전시를 앞두고 열린 특별전 출품작의 하나일 뿐이었다. 이 작품들은 어쩌면 일부 관객의 관심만을 산 채 조용히 묻히거나, 아예 작품성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관객의 평가가 이뤄지기도 전에 관이 개입했고, 그 결과 작품의 창작자들은 ‘권력에 대항한 예술가’라는 명예로운 지위에 올랐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정감사에 나온 어느 여당 의원은 <다이빙벨>이 ‘노이즈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했는데,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해당 의원이야말로 마케팅의 일등공신이다. 


‘예술의 자율성’이란 환상에 불과하다. 어느 시대에도 예술은 권력, 자본과 갈등하고 타협, 즉 ‘밀당’했다. 그리고 이 긴장감이 작품을 살아있게 만들았다. 그러나 올해 광주와 부산에 ‘밀당’은 없었다. 돈줄 쥔 자가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려 했다. 이 권력, 치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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