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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배우를 말한다

영화 <글러브>리뷰+유선 인터뷰

아래 사진 설명 중, 엘티 트윈스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 근거해 작성한 대목이 있었음을 사과드립니다. 해당 부분은 삭제했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정재영은 <글러브>에서 엘지 트윈스 소속 선수다. 


설날 극장가 성수기를 앞두고 개봉하는 <글러브>는 많은 부분에서 예상가능한 영화다. 강우석과 오랜 시간 함께한 배우, 스태프가 모여 한국 관객이 좋아하는 이야기를 전한다. 짐작하는 만큼의 눈물과 웃음이 있고, 화면은 평균적인 한국 관객이 소화하기 좋을 정도로 구성됐다. <글러브>에서 예상을 벗어난 것은 다소 긴 상영시간(144분)뿐이다.


그러나 강우석의 예상가능한 영화들은 언제나 시장에서 통했다. <글러브>는 서너 번 크게 울리고, 여러 번 작게 웃긴다. 뻔한 대사, 뻔한 이야기, 뻔한 상황이 이어지는데 아무튼 눈물이 난다. 충주 성심학교의 청각장애 야구부 이야기를 극화했다. 프로야구 에이스 투수 김상남(정재영)은 잇달아 사고를 쳐 징계 받을 위기에 놓이자, 이미지 관리를 위해 이 야구부의 임시 코치로 부임한다. 음악교사 겸 야구부 매니저 주원(유선)과 교감(강신일)은 꿈도 크게 “전국 대회 출전!”을 외치지만, 김상남이 보기엔 어림도 없다. 대충 시간을 때우던 김상남은 아이들에게서 자신이 잃었던 야구에 대한 꿈과 열정을 발견한다. 김상남과 아이들이 하나가 돼 야구에 몰두할 무렵, 야구위원회에선 김상남에 대한 징계절차가, 학교에선 야구부 해체 논의가 시작된다.

난 이 장면에서 조금 울 뻔 했다.



몇 가지 교훈적인 주제가 전달된다. 야구는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것. 그러나 때로는 자기 뒤에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해야 한다는 것. 야구도 때론 싸움이라는 것. 대단한 접전이 때로는 허망하게 끝나기도 한다는 것. 이 문장들에서 ‘야구’를 ‘삶’으로 바꿔 읽어도 무방하겠다.

강우석 영화에는 종종 안되는 걸 되게 하려는 인물들이 등장했다. <공공의 적> 속 형사 강철중은 자기보다 훨씬 힘센 인물들을 잡아넣으려 했고, <실미도>의 북파공작원들은 무작정 북으로 가려 했고, <이끼>의 주인공은 고립된 마을에서 주민 전체와 싸웠다. 이 비합리적인 의지의 인물들은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고 생각하는 많은 현대의 관객들에게 기묘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왔다.

<글러브>의 '실미도스러운' 장면들.

<글러브> 역시 이토록 강한 의지를 칭송하는 영화지만, 성심학교가 군산상고를 이기기는 힘들다는 것을 인정할 정도로는 현실적이다. 성공이 아니라 실패가 예견되는 사람들을 그린다는 측면에서, <글러브>는 강우석의 2000년대 작품들 중 <실미도>를 가장 닮았다. 성심학교 야구부의 훈련 장면이 <실미도> 공작원의 훈련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것도 우연은 아닐 것 같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 이후 강우석 감독의 영화로서는 처음 전체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20일 개봉.


사진 이석우 기자

배우 유선은 동료 여배우들에게 부러움과 질투의 시선을 받을 것 같다. 2000년대 들어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지만 줄곧 ‘남자 영화’만 찍어온 강우석 감독이 두 번 연속 기용한 유일한 여배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흥행작 <이끼>, 곧바로 출연한 <글러브>에서 유선은 충주 성심학교의 음악교사 겸 야구부 매니저인 나주원 역을 맡았다. 나주원은 야구부 임시 코치로 부임한 스타 김상남(정재영)과 청각장애 야구부 학생들 사이에서 좌충우돌한다.

역을 소화하기 위해 유선은 3개월간 수화를 배웠다. 대사만 익히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숙달했다. 간단하게 보여달라고 요청하자 유선은 “수화도 외국어 같아서 하지 않으면 잊어버린다”면서도 몇 가지 손동작을 해보였다.

역할 특성상 메이크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한여름 뙤약볕에 그늘 한 점 없는 운동장에서 연기를 했다. 하도 야외에 서 있었더니 나중엔 양말 신은 발과 발목의 경계선이 ‘박세리 발목’처럼 두 가지 톤으로 나뉘었다. <이끼>에 이어서 여배우로선 예쁘게 보이기 힘든 역이다.

“외모에 집착하지 않아도 돼서 오히려 편하던 걸요. 배우로서 달리 신경써야 할 부분이 적어지니까 몰입도도 커지고…. 무엇보다 <이끼>의 영지나 <글러브>의 주원이나 충분히 예쁘게 표현됐다고 생각해요. 그 내면이 보이니까요.”

<이끼>와 <글러브>에서 모두 주요 배역으로선 촬영장의 홍일점이었다. ‘불편하지 않았나’라고 물으니 “솔직히 다른 여배우가 없어서 더 편했다”고 답했다.

“드라마에서 여배우는 대부분 대립 구도로 캐스팅돼요. 극적 긴장감이 실생활까지 연결될 때가 있어요. 두 여배우가 같이 나오면 연출자와 스태프까지 긴장하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묘한 긴장감이 흘러요. 정말 잘 맞는 배우라면 오히려 작품 끝나고 더 친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실제 성격이 밝고 명랑한 편인 유선은 영화 속에선 우울하고 기괴한 역을 주로 맡았다. 지금까지의 영화 연기보다 두 톤 정도 밝은 <글러브>의 주원은 “정말 기다린 역이었는데 막상 해보니까 힘들었다”고 전했다. 한 번도 안 해봤으니 당연했다. 영화 촬영 3분의 1 지점까지는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취미를 묻자 유선은 “없다”고 단언했다. 할 일이 없으니 쉬는 것도 안 좋아한다고 했다. “연기는 일이 아니라 꿈, 촬영 자체가 매일 꿈”이다. 이 때문에 여러 사정으로 현장에 서지 못했을 때 너무나 힘들었다고 말했다. 영화 <가발>이 끝나고 1년 가까이 공백기가 있었는데 스트레스가 엄청났다.

유선에겐 행복하게도 당분간 일복이 터졌다. <이끼> 개봉도 하기 전에 <글러브> 촬영에 들어가더니, <글러브> 홍보 일정이 끝나면 바로 구한말 배경의 사극 <가비> 촬영에 들어간다. 이후엔 다시 억울하게 죽은 딸에 대한 복수를 하는 어머니 역을 맡은 <돈 크라이 마미>의 주연이 된다.
일 욕심 많은 유선에게 2011년은 욕심을 채워주는 한 해가 될 것 같다.

사진 이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