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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백색의 두 가지 방향, '눈'과 '흰' 지난해 김민정 시인은 인터뷰하는 자리에 넓직한 교정지를 들고 왔다. 무슨 책이냐 물어보니 곧 나올 막상스 페르민의 '눈'(난다)이라고 했다. 너무나 아름답고 시적인 책이라고 자랑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작가 한강에게 이 책을 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페르민은 처음 듣는 작가라 이름만 기억했다. 인터뷰 다음 달 '눈'이 출간됐으나, 곧바로 집어들만큼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여름 막바지가 돼서야 챙겨두었던 '눈'을 펼쳤다. 1999년 출간된 책이다.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124쪽에 불과하고, 게다가 행간이나 여백이 넓어 텍스트는 더욱 적다. 마음 먹으면 1시간 이내로 읽을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종류의 책을 '마음 먹고' 읽을 이유는 없다. 책에 여백이 많다는 건 그만큼 독서에도 여백.. 더보기
채식이 아니라 소멸, 한강의 '채식주의자' 한국을 넘어 전세계의 내로라하는 평론가들이 한 마디씩 걸친 한강의 에 대해 뭔가를 말하기가 쑥스럽지만, 그래도 무언가 적어본다. 3편의 연작 중편 중 '채식주의자' '나무 불꽃'은 좋았고, '몽고반점'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작중 성행위 퍼포먼스를 권유받은 뒤 당혹해하는 아티스트의 반응처럼 "내가,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온건한 사람"인 이유인지도 모르고. 첫번째 중편 '채식주의자'의 화자는 이 소설속의 등장인물들 중 가장 평범한, 그래서 고루한 사람이다. 이런 지루한 남편의 목소리로 '영혜'라는 문제적 인물을 소개하기 시작한 것은 독자를 소설 속 세계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데 전략적인 도움이 된다. 영혜는 끔찍한 고깃덩어리와 피와 이것들이 연상시키는 살육의 이미지로 가득찬 꿈을 꾼 뒤 육식을 거부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