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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서 나쁠 것 없는 신. <신의 뇌>

이런 류의 책은 좋아하고 잘 읽힌다. 카렌 암스트롱의 책이 대표적이며, 내 입장과도 비슷했다




신의 뇌
라이오넬 타이거·마이클 맥과이어 지음 | 김상우 옮김

칼 세이건은 “믿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것도 설득시킬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의 믿음은 증거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간절한 필요에 기초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티븐 호킹은 한발 더 나갔다. 그는 “천국은 없다. 사후세계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동화일 뿐이다. 사람들은 열망하지만 결국은 성취불가능한 윤리적 질서나 생활 방식의 근거로서 신을 찾는다”고 이죽댔다. 카를 마르크스는 더욱 냉소적이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뉘앙스에는 차이가 있지만, 종교에 대한 이 세 사람의 태도는 유사성을 가진다. 종교 혹은 신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신의 뇌>를 함께 쓴 인류학자 라이오넬 타이거와 생의학자 마이클 맥과이어도 이 같은 시각을 공유한다. 그러나 세이건, 호킹, 마르크스의 태도가 종교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최소한 중립적이었던 것과 달리 타이거와 맥과이어는 긍정적이다. 그들은 인간의 뇌는 진화적인 필요에 의해 신을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진 신은 뇌를 위안(brainsoothing)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종교적 믿음을 “옳은 지식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믿어서 굳이 나쁠 것이 없는” 것으로 파악한다. 

종교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가졌다. 어두컴컴한 동굴의 벽에 사냥감의 그림을 그리던 선사시대 화가들에게도 종교적 심성이 있었다. 현재 기독교,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도교 등의 종교에 동물의 특별한 힘이나 신비로운 상징을 숭배하는 종교를 더하면, 세계 성인 인구의 80% 이상이 종교인이다. 전 세계에는 4200개의 신앙집단, 종교가 있다. 성경은 전 세계 6912개 언어 중 4516개 언어로 번역됐다. 구글 검색창에 ‘Religion’(종교)을 치면 3억7000만개의 검색 결과가 나온다. 마르크스의 신념을 받아들인 공산주의 국가에도 교회나 절이 있다. 

“종교란 중력처럼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피할 수 없는 거대한 현상”이며 “자신의 신앙을 전부로 여기는 사람에게 종교적 믿음과 행동규범은 그들의 췌장만큼이나 삶의 한 부분”이다. 

종교가 무슨 소용이 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삶에 개입할 수 있었을까. 종교는 삶의 스트레스를 달래주고, 불확실한 미래의 답을 준다고 저자들은 말한다. 석가모니는 “삶은 고통”이라고 말했다. 파스칼은 “나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하고 나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무한한 공간 속에 빠져 있는 것 같다. 정말 불안하다.… 나를 둘러싼 이런 무한한 공간의 침묵이 나를 놀라게 한다”고 토로했다.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것만이 고통은 아니다. 일상의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의 불확실성도 스트레스다. 

뇌는 이런 불확실성을 힘들어 한다.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막연한 것보다는 분명한 것을, 불균형과 비대칭보다는 균형과 대칭을 좋아한다. 뇌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와 신체에서는 화학적 변화가 일어난다. 무서우면 아드레날린, 불안하면 코르티솔이 나온다. 이런 호르몬은 단기적으로는 스트레스와 싸우거나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데 도움을 주지만, 스트레스의 축적에 끝내 버텨낼 장사는 없다.

호주 원주민 사이엔 ‘부두 데스’(voodoo death)라는 현상이 있다. 마법사의 저주를 받은 원주민이 스트레스와 걱정으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 것이다. 종교는 이 모든 고통, 스트레스에 대한 답이자 일상사의 윤활유다. 햇과일을 처음 먹고 소박한 밥상에 감사하고 오래된 코트를 구세군에 기증하는 등의 일상사에 기쁨의 조명을 비춘다. 

종교적 교류, 의식(儀式), 믿음은 대부분 종교의 특징이다. 이 삼총사는 신앙인들의 스트레스를 체계적으로 줄여준다. 먼저 종교적 교류. 교회나 절같이 성스러운 장소는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뇌는 이같이 성스러운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부자나 빈자나 신 아래서는 같은 계급이다. 세속적 위계구조가 일시적으로 사라지고, 뇌는 줄곧 긍정적인 신호를 받는다. 기존엔 뇌와 신체에서 경험이 시작된다는 연구 결과가 지배했는데, 최근엔 경험이 뇌와 신체를 만든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버빗원숭이 집단을 연구해보니, 우두머리 수컷에게선 부하 수컷보다 행복을 유발하는 호르몬인 세로토닌이 2배 이상 나왔다. 지위가 바뀌면 호르몬 양도 바뀌었다. 

다음은 의식. 종교의식은 뇌의 생화학 체계를 바꾼다. 예를 들어 명상 등의 사색을 하면 산소 소비와 심장 박동이 줄어든다. 기도를 하면 덜 긴장하고 마음이 편해진다. 유산염 같은 신체 화학물질이 감소하고, 뇌에서는 혈압과 알파파가 감소한다. “노점 채소가게 주인이 차가운 콘크리트 바닥에 이마를 대는 종교의식을 행할 때는 무슨 일인가가 그의 뇌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믿음. “믿음은 알 수 없는 것을 알려주고 미래를 보여준다. 믿음은 내세의 영원한 대축제를 위해 준비된 메뉴를 보여준다.” 세상의 불확실성과 모호함은 뇌에 고통을 주지만, 종교는 ‘진리’라는 명확한 스토리를 제공해 이런 고통을 덜어준다. 뇌의 신피질은 스토리텔러다. 이 스토리텔러는 사람이 태어나 온갖 역경을 겪지만 결국 이겨내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해피엔딩을 선호한다. 종교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신피질의 취향에 맞다. “종교적 환상은 경험의 불완전성을 채우기 위해 뇌가 활동한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내세’는 종교의 ‘대표상품’이다. 이승에서 착한 일을 하면 저승에서 복을 받고, 반대면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만한 해피엔딩이 어디 있겠는가. 

종교가 삶의 고통을 덜기 위한 인간의 발명품이라면, 인간과 94~96%의 DNA를 공유하는 침팬지에게도 유사 종교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침팬지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 있다고 한다. 얼마 전까지 적대시하던 침팬지들이 금세 다정하게 지내거나, 심지어 서로 협력해 음식을 구하기도 한다. 어떤 침팬지 무리는 ‘종교적 휴일’을 즐긴다. 이날 침팬지들의 행동은 평소보다 느리고 소리도 조용하다. 외부 세계와 떨어진 조용한 숲속은 ‘장엄한 대성당’같기도 하다. 에머리 대학교의 프란츠 드 발은 “동물들은 태어날 때부터 페어 플레이에 대한 의식을 갖고 있으며, 무리의 다른 구성원에 대해 연민을 보인다”고 말한다. 침팬지에게 ‘신’은 없겠지만, 적어도 ‘도덕적 행동의 전신(前身)’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저자들은 “인간의 본질은 생물학”이라고 단언한다. “수많은 문명과 종교를 망라해 유사한 행동이 나타난다는 사실은, 외형상 어떤 차이가 있다 해도 생물학이 그런 유사 행동의 기초와 구조가 된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종교가 “인간 질서를 만드는 초월적 규범”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생물학이 종교보다 훨씬 큰 권위를 제공할 수는 있겠지만, 종교만한 ‘매력’은 없다. “생물학에는 변덕스러운 자연선택에 따른 유전자 복제를 제외하고 사후의 삶이나 내세라는 것이 없다. 또 생물학에는 그 규범을 준수했을 때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존감을 세울 수 있는 규범이 없으며, 의학적으로 사망한 후에도 내세를 보장해주는 행동과 감정에 관한 규범이 없다.”

저자들은 유물론자들이다. 종교란 ‘축축한 뇌 조직의 떨림’이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그러나 이 환상이 장엄한 대성당, 고즈넉한 산사, ‘기적’에 대한 믿음, 감동적인 종교예술, 믿을 수 없이 숭고한 희생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다. “인간이 상상하는 많은 것은 실제 경험하는 것과 같은 비중과 가치, 동일한 권위가 주어진다.” 

책은 대체로 종교의 긍정적 측면을 부각시켰다. 종교의 개종 권유, 전도활동이 기업의 사업 확장이나 시장점유율 확대와 비슷하다는 점을 지적했고, 9·11테러를 미국내 동성애와 낙태에 대한 “신의 응징”이라고 말한 미국 보수적 목사를 언급하기는 했다. 그러나 종교의 부정적 측면은 이 책의 주제가 아니다.

한국 독자들은 미국 학자들이 강조하는 종교의 유용성을 적당한 선에서 걸러 읽을 듯하다. “전에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했다. 지금은 세상이 종교를 걱정한다”(도법 스님)는 자성까지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특히 세속의 지위를 교회로 끌어들인 뒤, 교회에서 얻은 명망을 다시 세상 권력을 휘두르는 데 이용하는 어떤 이들의 존재 때문에 “같은 신앙인으로 함께하는 동안 현실의 위계질서는 잠시 사라진다”는 구절을 읽기 민망하다. 

옮긴이는 이 책이 “선악을 구분하거나 종교를 비판하거나 과학의 우월성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풀이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신론자라 할 수 있는 리처드 도킨스는 이성을 무기로 종교를 공격하지만, 그조차도 종교가 오랜 세월 인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지 못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