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개봉한 '인천상륙작전' 리뷰.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2000년대의 한국영화들은 변화한 시대의 감수성에 맞추기 위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곤 했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는 장동건·원빈 형제가 겪는 비극으로 분단의 아픔을 형상화했다. <웰컴투 동막골>(2005)은 평화로운 시골 마을에서 국군, 인민군, 유엔군이 팝콘을 튀겨 먹는 모습을 그렸다. <고지전>(2011)은 거대한 흙덩이에 불과한 고지를 탈환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명을 소진하는 참담함을 그렸다.
20일 언론시사를 통해 공개된 <인천상륙작전>(CJ엔터테인먼트 투자·배급)은 방향을 달리한다. 총제작비 170억원가량이 투입된 이 대작은 선명한 ‘반공영화’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념을 위해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들로, 국군은 가족애와 동료애가 넘치는 용사들로 그려진다.
6·25 개전 직후가 배경이다. 유엔군 최고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리엄 니슨)는 많은 이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전세를 뒤집으려 한다. 이를 위해 장학수(이정재) 등 8명의 첩보부대원을 인민군으로 위장시켜 인천에 미리 잠입하도록 한다. 첩보부대는 인민군의 배치, 기뢰의 위치 등을 알아내기 위해 애쓰지만 쉽지 않다. 간교하고 무자비한 인민군 사령관 림계진(이범수)은 장학수의 정체를 의심한다.
<인천상륙작전>에는 공산주의자들의 패륜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여러 번 등장한다. 인민군 림계진은 종교를 가졌다는 이유로 여동생을 총으로 쏜 어느 소련 교수를 영웅이라고 부른다. 국군 장학수 역시 비슷한 사연을 가졌다. 그는 원래 공산주의자였는데, 어느 날 동료들이 부르주아인 아버지를 잡아와 총으로 쏘라고 독촉한다. 장학수가 주저하는 사이 다른 친구가 대신 총을 쏜다. 친척이 배신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바로 다음날, 간호사 한채선(진세연)은 친한 동료로부터 얼굴에 침세례를 받는다.
영화에서 규모가 큰 전투 장면은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을 시작하는 후반 20여분에 몰려 있다. 중반부까지는 장학수를 중심으로 한 8명 대원들의 첩보전이 중심이다. 기뢰 위치도를 탈취하는 과정이 ‘케이퍼 무비’(범죄의 준비와 실행 과정을 보여주는 영화) 성격을 띠는가 싶더니, 작전은 의외로 허무하게 막을 내린다. 대원들은 저마다 애틋한 사연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지만, 관객이 인물에 감정을 이입할 만큼의 시간은 할애되지 않는다. 이정재, 박철민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원들의 개성이나 인상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동료들이 하나둘 목숨을 잃어 대원들이 절규할 때, 관객은 멀뚱하게 쳐다보는 과정이 반복된다. 대원들이 간직한 사연은 영화가 끝난 후 인터뷰 형식으로 제시되지만, 이는 뒤늦을뿐더러 <밴드 오브 브라더스> 같은 드라마의 형식을 어설프게 차용했다는 인상을 준다. 대작에 걸맞게 수많은 카메오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배역이 카메오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느낌이라는 건 문제다. 대표적인 이가 격투기 선수 추성훈이다. 북한군으로 분한 그는 도주하는 첩보부대원의 트럭에 올라타 이정재와 한참 드잡이질을 한다. 그가 언제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는 알 길이 없다.
맥아더는 전쟁에서 이기겠다는 호승심, 옳다고 믿는 일은 아무리 큰 반대에도 밀어붙이는 의지를 가진 인물로 그려진다. 그를 만류하는 장군들은 맥아더가 불가능에 가까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을 바탕으로 차기 대선에 출마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품는다. ‘인간 맥아더’에 대해 깊이 탐구했다면 조금 더 흥미로운 영화가 됐을지 모르지만, 리엄 니슨의 출연 분량은 카메오와 주연 사이의 애매한 수준이다. 맥아더는 “사람은 단지 오래 살았다고 늙지 않아. 자신의 이상을 버릴 때 늙게 되는 거야” 같은 멋진 대사를 한다. 하지만 풍랑을 뚫고 인천으로 향하는 군함 위에서 왜 갑자기 이런 명언을 남기는지는 의아하다.
<인천상륙작전>은 올여름 개봉하는 다섯 편의 대작 한국영화 중 두 번째 작품이다. 첫 주자로 나선 <부산행>은 개봉 첫날인 20일 하루에만 85만 관객을 동원해 역대 최다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27일 개봉하는 <인천상륙작전>이 <부산행>의 기세를 꺾을 수 있을까. 한국전쟁 당시의 학도병 이야기를 다룬 <포화 속으로>의 이재한 감독이 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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