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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

지루함의 제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인기만큼 논란도 많은 작가지만, 나는 대체로 그의 작품을 즐겁게 읽었다. (읽다가 그만둔 건 에세이집 뿐이다.) <IQ84>나 <노르웨이의 숲> 같은 소설도 재미있었지만, 내게 가장 흥미로웠던 무라카미의 작품은 <언더 그라운드 1, 2>였다. 특히 옴 진리교 소속 신도들의 인터뷰를 담은 2편을 완전히 몰입해 읽었다. 이 인터뷰는 후일 <1Q84>의 창작 모티브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가가 작심을 하고 취재를 시작해 그것을 픽션이 아니라 논픽션으로 옮길 때 훌륭한 작품이 나올 때가 있다.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가 대표적일 것이다. (물론 오웰은 소설가이기 이전, 기자이기도 했다) 최근엔 알렉시예비치의 작품들이 훌륭했다. 그러고보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중요한게 아니다. 단지 왠지 모르게 우리의 문화 제도가 픽션에 예술적 가중치를 두는 것으로 합의를 해왔을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시드니 올림픽 취재기 <시드니!>(비채)도 재미있었다. <언더그라운드>만큼 밀도가 있지는 않았지만, 스포츠에 대한 새로운 방식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무라카미는 잡지사의 의뢰로 시드니 올림픽 취재를 가게 됐는데, 그 자신이 거대 자본에 의해 통제되는 올림픽 같은 것은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취재하면서도 이런저런 불평을 계속 늘어놓지만, 그 와중에 올림픽에 대한 가끔의 경탄이 섞여 달콤쌉싸레한 글이 나왔다. 무라카미 자신이 마라토너인만큼 마라톤이나 장거리 경기에 대한 묘사와 통찰이 인상적이다. 무라카미는 올림픽의 전후에 일본의 유명한 마라토너를 따로 인터뷰함으로써 애정을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1949~). 광화문 교보문고 복도에 얼굴을 올릴 수 있을까. 



경기에 대한 묘사나 개인적 인상만 나열하고 그치면 뭣하니까, 무라카미는 결론부에 이르러 그럴듯한 의미를 부여한다. 아마 작가로서 텍스트에 대한 최소한의 형식적 완결성을 추구한 것 같다. 조금 옮겨보자면 이렇다. 


그러니 내게 시드니 올림픽은 끝까지 지루했지만, 그래도 그 지루함을 보상받고도 남을 만큼(어쩌면 간신히 보상할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긴 결혼 생활에 일종의 어두운 측면과 마찬가지로. 


베토벤은 (아마)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뇌를 통한 환희를" 하고 외쳤지만, 그건 아주 오래전, 피가 끓고 가슴이 뛰던 로맨스 시절의 이야기다. 영웅이나 악한조차 긴 단어를 사용해서 사색했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런 시절은 이미 옛날에 지나갔다. 요즘은 '지루함을 통한 감명(같은 것)을' 정도가 그나마 우리가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감상이 아닐까. 그리고 올림픽이란(적어도 내게는), 그러한 밀도 높은 지루함의 궁극적인 제전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리 내면의 공격성을 만족시키고, 우리 외부의 영웅을 손에 넣는다. 모험이라는 빛나는 영예를 얻은 영웅을, 물론 우리의 대리인으로서. 


그나저나 무라카미는 하루에도 조깅을 60분가량 하고, 밥을 다 챙겨 먹고, 막히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올림픽을 관전하고, 저녁에 호텔 부근의 바에 가서 맥주도 한 잔 하면서, 매일 30매는 넘는 글을 써서 잡지사에 보냈다고 한다. '매일 30매'라는 대목에서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