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오피스 경제학'(김윤지/어크로스)을 읽다. 책에는 두 가지 목적의 글이 혼재돼 있다. 대중문화산업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전략들을 경제학의 도구로 풀어보기, 혹은 경제학의 여러 이론들을 대중문화에 빗대 설명하기. 대중문화산업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전자의 글에, 현대의 경제학 이론에 관심있는 이라면 후자의 글을 보고 싶을 것이다. 대체로 책 전반부엔 전자의 글이 많이 보이고, 후반부로 갈수록 반대가 된다. 난 물론 전자의 글이 더 잘 읽혔다.
대중문화 관계자들이 감, 직관에 의존해 풀어왔던 일들을 경제학적, 과학적으로 해석해낸다는 점은 흥미롭다. 어찌 보면 산업내 명민한 플레이어라면 경험적으로 다 알고 있는 것들인데, 이 경험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마련한다. 예를 들어 '강남 스타일'이 해외에서 인기라면, 정말 한국산 휴대폰, 음식 등의 인기도 올라갈까? 상식적으로 그럴 것 같지만,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이 책은 이런 직관이 사실이라는 근거를 댄다. 영화사들이 개봉일 스크린수 확보에 사활을 거는 건 다 알려진 일인데, 이 책은 감독, 배우, 스태프가 만들어내는 영화 자체의 퀄러티보다 개봉관수가 흥행에 더 큰 영향을 미침을 숫자로 보여준다.
반면 다 아는 얘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틀렸음을 보여주는 대목도 있다. 예를 들어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즐길 수 있는 영화는 대표적인 불황산업"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저자는 "소득이 줄어들면 영화 관람객도 줄어들고, 영화 티켓 가격이 싸지면 더 많이" 본다는 경제학의 당연한 결론을 제시한다. 불황이라고 영화 많이 보는 건 아니고, 영화를 많이 보는 건 개별 영화가 좋기 때문일 뿐이라는 결론이다. 경제 불황과 한국 영화산업의 호황을 연결짓는 주제의 기사를 가끔 써온 입장에서 쑥스러운 독서 경험이다. (앞으론 그런 기사 안쓰겠습니다)
저자가 여러 차례 경계하고 있기는 하지만, 개별 아티스트들의 예술적 야심, 모험심, 창의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최적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처럼 계산다는 점은 경제학에 기반한 책의 한계라고 봐야할지 모르겠다. 하긴 그런 부분은 이 책의 목적이 아니니 뭐라고 비판할 대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독자에게 친밀감을 높이기 위함인지 저자가 간혹 개인적 사연과 경험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것도 트렌드라고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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