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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률을 만나다

장률 감독을 처음 만난 건 그의 세번쨰 장편 <경계>가 개봉한 2007년이었다. 배우들이 거의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고, 카메라는 배우가 움직인 한참 뒤에야 따라가는 '이상한' 영화였다. 신작 <두만강>은 장률의 영화 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극적이다. 솔직히 그래봐야 대부분의 사람에겐 보기 힘든 영화겠지만. 조선족 소년 창호의 마지막 선택은 다르덴 형제의 <약속>이 제기한 도덕적 책무를 연상케했다.



권호욱 기자

<두만강>은 장률의 여섯 번째 장편이다. 두만강을 넘어 북한 함경도와 마주하고 있는 중국 옌벤 조선족 마을이 배경이다. 조선족 소년 창호는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두만강을 넘나드는 북한 소년 정진과 우정을 나누지만, 이 우정은 어른들의 복잡한 이해관계에 휘말린다.

-이 영화는 왜 찍었나.

“이런 사건을 보고 들으면 사람의 감정이 개입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서 보도하면 관심이 1주일 정도 몰렸다가 차츰 사라진다. 언론은 사건에 관심을 갖지만, 창작자들은 사람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 감정을 다뤄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을 주민 골고루에게 관심을 가진 것 같다.

“두만강이 내 영화의 주인공이다. 그 흐름에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다. 강 표면은 꽝꽝 얼어붙었지만 그 밑에는 물이 흐른다. 사람들의 표정은 얼어붙었지만 안에는 감정이 흐른다.”

-탈북자가 자신을 환대해준 소녀 순희를 겁탈하는 장면이 나온다. 마침 텔레비전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뉴스가 나오고 있다.

“배신감은 친한 사람에게만 느낀다. 잘 대해준 사람이 내게 피해를 주면 기억하지 않는가. 우리 일상이 그런 것 같다. 그렇다고 도움을 주지 않아야 하는가. 도움주면 계산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세상은 깨진다. (겁탈 장면을 직접 보여주지 않는 것은) 순희가 너무 착하기 때문이다. 도저히 그 장면을 못 보여주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북한 체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나.

“없다. 내 능력으로는 체제에 대해서 알 수 없다. 단, 배만 안고프면 견딜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 중국도 1960년대 초 3년 재해가 있어서 많이 굶어죽었다. 그때 10만명이 북으로 넘어갔다. 난 보는 만큼만 진실하게 말할 뿐이다. 비판하는데까지 나아가면 내가 하나님 비슷하게 된다. 난 아무 것도 모른다. 얼마나 모르면 영화를 찍겠는가.

-카메라 앞에 서본 적도 없는 현지 주민들을 대거 배우로 기용했다. 말투가 낯설고 연기가 딱딱한 것 같다.

“그쪽 말투가 원래 그렇다. 거칠다. 그래서인지 함경도 말투가 북한 군대에서 유행이라고 한다. 표정도 환경과 관계 있다. 단조로운 사회에 있으면 표정이 딱딱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도 그렇게 표정이 적은 사람이 있다. 노동자들이다. 길가에 힘들게 앉아있는 사람을 보면 표정이 멍하다.”

-조선족 소년 창호는 친구를 구하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왜 그래야만 했나.

“아이들은 탈출구가 없으면 순정이라도 지키려 한다. 아이들은 계산을 못하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탈출구를 주지 않았고, 아이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세상이 여기까지 왔다.”

-당신 영화중 처음으로 고향에서 찍었다. 편했나.

“전혀 편하지 않다. 영화 작업은 어느 나라 누구를 찍어도 불편하다.”

-그러면 영화는 왜 만드나. 소설은 더 이상 안쓰나.

“왜 사냐는 말처럼 들린다.(웃음) 제일 못믿을 놈이 자기다. 어느날 소설을 쓸지 라면집을 할지 어떻게 알겠는가.”